현진영·HOT·보아 '기획'… 가수를 혁신하다
'보는 음악' 시대 창조… 'K-팝 한류' 열었다
케이팝이 한국의 대표상품이 됐다. 프랑스에서도 이란에서도 남미 의 페루에서조차도 젊은이들이 한국 걸그룹, 보이그룹의 춤과 노래 와 모습에 열광한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27>혁신적 음악기업가 이수만
SM의 힙합 프로젝트

K팝이 한국의 대표상품이 됐다. 프랑스에서도 이란에서도 남미의 페루에서조차도 젊은이들이 한국 걸그룹, 보이그룹의 춤과 노래와 모습에 열광한다.

K팝의 뿌리에는 이수만이라는 기업가가 있다. 그는 주먹구구식 대중가요 산업에 체계적 예측과 투자 개념을 도입했다. 재능이 보이는 아이들을 뽑아서 매력적인 스타로 키워냈고 해외로도 진출시켰다. 외국 작곡가, 안무가들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 세계적 감각의 음악을 생산했다. SM엔터테인먼트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투자자들과 ‘윈윈’ 하는 채널도 만들어냈다.

이수만은 원래 가수이자 방송진행자였다. 연예기획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은 1980년 미국 유학 중 음악 전문 케이블채널인 MTV를 보면서였다. 그전까지의 음악은 ‘듣는 것’이었는데 MTV는 그 음악들에 색채와 패션을 혼합해서 ‘보는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수만도 한국에서 ‘보는 음악’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었다. 귀국해서 돈을 모은 후 1989년 연예기획사인 SM기획의 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첫 기획은 힙합 프로젝트였다. 이태원의 어린 춤꾼들이던 현진영, 강원래, 구준엽을 발탁해 ‘현진영과 와와’를 구성했다. 미국에서 인기 절정이던 바비브라운을 모델로 훈련을 시켜나갔다. 성공의 조짐이 보이던 차에 마약사건이 터져 물거품이 된다. 모든 투자금을 날리고 거의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한다. SM기획 소속 가수와 작곡가들도 모두 곁을 떠났다.

그런 지경에서 시작한 두 번째의 프로젝트가 H·O·T였다. 안 떠나고 남아 있는 어린 연습생들을 모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타깃 소비층은 한국의 고등학생, 벤치마킹 모델은 미국의 뉴키즈온더블럭이었다. 1996년 캔디가 빅히트를 기록했다. 신드롬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HOT 열풍이 이어졌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훈련·자본·홍보를 기업이 맡는다

이수만은 HOT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첫 시도로 3인조 걸그룹 SES를 일본에 진출시켰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못 거뒀다. 후속 프로젝트는 보아였다. 초등 5학년생인 권보아를 발탁해 일본 적응 훈련을 국내 훈련과 병행한다. 일본 현지 가정에 홈스테이를 시키면서 일본 문화, 일본어, 일본 음악을 익히게 한다. 2002년 ‘Listen To My Heart’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보아는 일본 최고의 가수로 등극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연습생 시스템이 구축됐다. SM기획 이전에는 가수가 되려면 본인이 돈이 있어야 했다. 작사, 작곡, 녹음, 홍보 모두 가수 본인의 돈으로 감당해야 했다. 체계적 음악 훈련 같은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수만은 가수의 훈련과 제작과 홍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기획사가 부담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수 지망생에게는 돈이 없어도 가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 가수의 실력을 높이는 계기도 됐다. 어린 나이에 연습생을 발탁해서 장기간 훈련을 시키는 시스템은 이수만이 만들었고 한국에만 있다.

한류 세계화 아이콘 ’보아‘

‘보는 음악’도 이수만이 길을 열었다. HOT를 기획하면서 노래는 잘 못해도 ‘비주얼’적으로 매력이 넘치는 멤버들을 포함시켰고 성공이었다. 그 뒤를 수많은 후발 기획사가 따라했다. 대중가수의 해외 진출도 그의 기여다. 보아의 성공에 이어 동방신기, 신화, EXO 등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그룹을 계속 기획했다. 이제 한국 가수에게도 해외 진출은 일상적인 일로 여겨지게 됐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해 자본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연결한 것도 이수만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SM엔터테인먼트 이후 수백 개의 기획사들이 생겼고 SM보다 더 성공한 곳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걷고 있는 그 길, 즉 연습생 시스템, 해외진출 방식, 자본시장과의 연계 등은 이수만이 처음 닦았다. 이렇게 본다면 이수만은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있어서 정주영이나 이병철에 못지않은 혁신적 기업가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기억해 주세요

우리나라 음악 비즈니스는 ‘이수 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이야 기가 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 악으로, 생방송에서 벗어나 화려 한 춤이 가능하도록 한 ‘립싱크의 장화’는 이수만이 개척한 새로운 분야다. 재능만 있으면 기획사가 모든 비용을 감수하고 철저게 키 우는 비즈니스의 등장. 이수만이 한국 가요계에 일으킨 혁신이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