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봉의 내 인생을 바꾼 한마디] 구름 깊고 사람 오지 않으니, 원망스러워라 장차 어디로 가야하나. - 허백당집 -
조선 초기의 학자 성현(成俔)의 의고(擬古) 10수는 무명씨의 고시(古詩) 19수(首)의 격식을 모방하여 지은 시이다. 다음은 그 8번째 시이다.

강물 건너 연꽃 따고 산에 올라 벽려(줄사철나무)를 캐니

그림자는 바람에 훨훨 나부끼고 향기는 소매에서 물씬 풍긴다.

마음 속 그리운 임 너무 보고 싶어 구름 속에 우두커니 서 있건만

구름 깊고 사람 오지 않으니 원망스러워라 장차 어디로 가야하나.

시인은 애써 잊으려 일에 몰두하지만 몰입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지 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을 멈추고 보니 임과 나 사이에 참 많은 걸림돌이 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만 또 그래서 밉다. 구름에 묻힌 산 위에서 임 계신 곳을 차마 응시하지 못하고 힐끔힐끔 본다. 원망과 그리움이 한껏 섞여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다. 자꾸만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순간이 찾아와 그때 마다 시인은 괴롭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아픈데 감추지 말자.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하자. 시인처럼 드러내고 잠깐 원망하자. 감기처럼 아픔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한마디 속 한자-何(하) 어찌, 어느, 무엇

▷ 하필(何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 억하심정(抑何心情): 도대체 무슨 심정이냐라는 뜻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알 수 없거나 마음속 깊이 맺힌 마음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