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누나를 좋아하게 된 소년, 누나만 보면 마음이 달뜨고···
선물을 못사고 서성이는 자신을 보고 허망함을 느끼는데···
방학동안 '모더니즘 선구자' 조이스를 만나보길···
옆집 누나를 사랑하는 소년선물을 못사고 서성이는 자신을 보고 허망함을 느끼는데···
방학동안 '모더니즘 선구자' 조이스를 만나보길···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0)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https://img.hankyung.com/photo/201707/AA.14248438.1.jpg)
「애러비」의 주인공 ‘나’는 어느 순간 친구 맹간의 누나를 좋아하게 된다. 맹간이 누나를 괴롭힐 때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나풀거렸고, 부드럽게 땋아 내린 머리채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아침마다 맹간의 집을 훔쳐보다가 그녀가 현관 앞으로 나오면 바로 책가방을 쥐고 달려 나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갈림길 지점에 오면 ‘나’는 일부러 걸음을 빨리하여 그녀를 앞지른다.

‘20세기 문학에 변혁을 일으킨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은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T S 엘리엇은 조이스의 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라. 그것이 이 위대한 작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보면 좋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15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애러비」는 그 가운데 하나로 길지 않은 단편소설이다. 다른 작가들의 일반적인 단편집과 달리 『더블린 사람들』은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다. 조이스는 “나의 의도는 아일랜드 도덕사의 한 장을 쓰는 것이었고,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내게는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나는 무관심한 대중에게 더블린을 어린 시절, 청년기, 성숙기, 공적 생활의 네 가지 측면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0)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https://img.hankyung.com/photo/201707/AA.14248435.1.jpg)
옆집 누나 때문에 마음이 달뜬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정신을 사로잡는 누나 생각에 혼란스러운 소년은 ‘나의 몸은 하프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하프 타는 손가락과도 같았다’고 표현한다. 드디어 누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애러비 장을 구경 갈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서 “굉장히 멋진 장일 거야”라고 말한다. 자신은 가지 못한다며 소년에게 “넌 한 번 가 보는 게 좋을걸”이라고 하자 소년은 “혹시 가게 되면 너에게 뭐라도 사다 줄게”라고 약속한다.
애러비 장에 가기로 한 날, 아저씨가 늦게 들어왔지만 ‘나’는 돈을 받아 기어이 길을 나선다. 밤 9시50분에야 바자가 열리는 건물 앞에 도착했고, 들어가 보니 이미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다. 허망한 마음으로 아직 닫지 않은 가게 앞을 거닐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지”라는 가게 점원들의 대화를 듣는다.
괜히 물건을 살 것처럼 서성이다 매점 사이의 어두운 길 한가운데로 걸어가던 소년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직시하게 된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나는 허영에 몰려 웃음거리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뇌와 분노로 타오르고 있는 나의 눈도 볼 수 있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누나 생각에 들끓는 열기, 늦은 시각에 기어이 집을 나서는 안간힘, 컴컴한 곳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허망함을 고스란히 전하며.

『더블린 사람들』은 가장 사랑받는 단편집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문학을 실현하기 위해 ‘의식의 흐름’ ‘열린 결말’ 같은 획기적인 기법을 개발한 조이스와 함께 「애러비」를 읽으며 소년의 마음에 젖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