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는 기회와 위기가 언제나 공존
삼미·삼보·쌍방울 등 대기업도 쓰러졌다
서울 종로2가 사거리에서 남산 쪽으로 걷다 보면 3·1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청계천 위에 걸쳐진 다리다. 사실은 그 길의 이름 자체가 3·1로다. 그리고 그 다리 입구에 서 있는 건물의 이름은 3·1빌딩이다. 층수도 지상 31층, 1971년 지어진 건물인데 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주는 삼미그룹이었고 오랫동안 삼미그룹의 사옥으로 쓰였다. 삼미가 도산하는 바람에 건물 주인도 바뀌었다. 현재는 홍콩의 스몰락인베스트먼트 소유다.삼미·삼보·쌍방울 등 대기업도 쓰러졌다
30대 대기업 중 16개 쓰러져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21) 쓰러진 기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AA.14160008.1.jpg)
기업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한편에선 생겨나고 다른 쪽에선 죽는다. 특히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기업이 죽었다. 30대 재벌기업 중에서 16개가 도산하거나 해체됐다. 삼미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그룹, 한보그룹, 쌍용그룹, 쌍방울그룹 등이 그 이름이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다.
한보그룹도 철강에 투자했다가 무너졌다. 한보는 세무서 직원을 하던 정태수가 세웠다. 대치동의 쓸모없어 보이는 땅에 아파트를 지었는데 대박이 났다. 지금의 은마아파트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사업을 벌려서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초부터 충남 당진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1997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했다. 사업 중 문제가 생기면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해결하곤 했다. 실제로 각종 범죄 혐의로 처벌되기도 했다. 한보철강의 부지와 시설들은 현대자동차가 인수했고 그 위에 현대제철을 세웠다.
무리한 투자가 몰락의 한 원인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21) 쓰러진 기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AA.14160071.1.jpg)
한편 쌍용그룹은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가 무너졌다. 쌍용그룹은 김성곤이 세웠는데 시멘트와 석유사업이 주력업종이었다. 2세인 김석원은 부친으로부터 그 사업들을 이어받아서 재계 6위에까지 올려놓았다(1990년대 중반). 그 바탕 위에서 자동차 업종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후 코란도와 무쏘를 내놓으면서 잘되는 듯했다. 하지만 투자의 막대함에 비해 수입은 크지 않았다. 1997년 신용경색이 닥쳐왔고 결국 두 손을 들기에 이르렀다. 쌍용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에 넘어갔다가 지금은 인도의 마힌드라그룹이 인수해서 운영 중이다.
대기업도 영원하지 않다
모험에는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큰 수익이 나오지만 실패하면 망할 수 있다. 쌍방울그룹은 레저산업으로 모험을 했다. 원래 쌍방울 내의로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2세인 이의철이 이어받아 트라이 등의 신세대개념의 제품으로 크게 성공을 거뒀다. 그가 택한 모험은 레저산업이었다. 무주 덕유산에 212만 평 땅을 사서 스키장과 종합레저시설을 건설했다. 1997년에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했고 내친김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스키점프 루이지 등 종목의 선수단을 만들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 전체가 무너졌다. 지금 무주리조트는 부영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21) 쓰러진 기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01.14174274.1.jpg)
기억해 주세요^^
삼미그룹, 한보그룹, 쌍방울그룹.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은 대기업이 쓰러졌다. 한때 잘 나가던 기업들이었지만 위기 극복을 잘못해서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