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응대부터 세무신고·암 진단
IBM '왓슨' 1년간 10조원 벌었다
미국 IBM의 인공지능(AI) ‘왓슨’을 이용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관련 매출이 이미 연간 10조원대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IBM이 1990년대부터 AI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컨설팅 조직을 활용한 마케팅을 전개한 결과 초기시장을 선점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AI와 로봇을 주축으로 삼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IBM을 따라잡으려는 각국 경쟁사들의 각축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뉴스 인 월드] 급성장하는 AI(인공지능) 산업
니혼게이자이신문은 IBM의 왓슨 관련 매출을 엔화로 환산하면 작년 1조엔(약 10조5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IBM이 왓슨 사업매출을 따로 분류해 공표하지 않지만 지난해 전체 매출(799억1900만달러)의 10%를 넘는 실적을 냈다고 추정했다.

이 신문은 왓슨 서비스를 활용하는 대형 고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점을 그 근거로 꼽았다. 지난 2월 미국 최대 세무 서비스업체인 H&R블록은 세금 신고와 각종 자문업무에 왓슨을 도입했다. H&R블록 소속 7만여명의 세무사가 법인·개인고객 1100만여명의 세금신고를 처리할 때 ‘인간적 실수’를 줄이자는 의도에서다. 고객은 왓슨을 통해 세세한 부분에서도 세금 환급 여부를 검증할 수 있게 돼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운전자의 습관과 취향을 고려한 정보 서비스를 왓슨의 도움을 받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본 유통업체 이온도 올초부터 2만여명의 자사 직원 스마트폰에 왓슨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앱(응용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고객응대 관련 서비스의 신속성과 정확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직원들로 운영해왔던 20여개의 자체 콜센터를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세무·유통 분야로 쓰임새 확산

왓슨 등장 초기부터 주목받은 의료 분야에서도 서비스 확산 속도가 빠르다. 미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뉴욕 메모리얼슬론 케터링 암센터 등 세계 각국의 35개 유명 의료기관에서 암을 비롯한 각종 종양진단에 ‘왓슨 헬스’ 서비스를 도입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의료 관련 지식과 임상시험 결과 등을 수집하고 분석해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 뭔지를 빠른 시간 안에 알려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왓슨이 빠르게 뿌리 내린 원인으로 ‘선발자 효과’를 꼽았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만만찮은 경쟁력을 갖춘 정보기술(IT) 분야 대형 업체도 AI산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보수적 이미지의 IBM이 확고히 입지를 다진 데에는 AI 비즈니스에 일찍 발을 디딘 IBM의 ‘전통’이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1997년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었고, 2011년에는 미국의 유명 퀴즈프로그램 제퍼디쇼에서 왓슨이 우승하는 등 AI 시장에서 경쟁력과 지명도를 쌓아왔다고 평가했다.

선점효과 ‘톡톡’…지속 여부는 미지수

IBM의 컨설팅 조직이 인공지능 확산에 첨병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IBM은 컨설팅 사업부문에서 정부 조직과 금융, 소매, 제조업 등 다양한 고객을 두고 있다. 그만큼 고객사에 적합한 맞춤형 AI 서비스가 가능하다. 다만 IBM의 이 같은 선점효과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AI 시장에서 크고 작은 벤처기업이 저가의 범용AI 서비스를 제공하며 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등장으로 IBM이 자랑하던 컴퓨터 메인프레임 시장이 무너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 AI 시장에서도 반복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차원의 제4차 산업혁명 준비계획인 ‘일본 부흥전략’에 AI를 주력 전략산업으로 명시한 일본의 추격도 무섭다. 지난 14일 일본 간병업체 세인트케어홀딩은 AI를 활용한 간호서비스 전문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요코하마은행, 지바은행 등 4개 지방은행도 내년부터 AI를 활용해 중소 영세사업자 등에게 소액대출 서비스를 시행하기로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공사 기간 지연 등으로 경제성이 떨어진 원자력발전사업의 돌파구를 AI를 활용한 설계기간 단축에서 찾는다는 방침이다. 도요타자동차 등도 자율주행차 기반 기술을 마련한다며 AI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도쿄=김동욱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