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발'
화이트씨 가족에게 돈이 생기지만 불행도 찾아오는데…
명작 반열에 오른 공포소설화이트씨 가족에게 돈이 생기지만 불행도 찾아오는데…
영국 작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는 낯선 인물이다. 주요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도 그의 책이 단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호러 걸작선》 《고전 공포 걸작선》 《세계 단편소설 읽기》 같은 책에 <원숭이 발>이 포함되어 있는 정도다. 우체국 공무원을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전념한 제이콥스는 어린 시절 템스 강 부두의 기억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한 소설 여러 편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포감을 몰고 오는 <원숭이 발>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원숭이 발>은 제이콥스의 대표작으로 1902년에 펴낸 그의 단편소설집 《The Lady of the Barge》에 실린 작품이다.
단순한 공포에 그치지 않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오묘한 작품으로 공포소설로는 드물게 명작 반열에 올랐다. 1980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근대 200년 영어문학 걸작 50편’을 선정할 때 <원숭이 발>도 포함되었다. 《모비딕》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주홍글씨》 같은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인정받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세 가지 소원’이라는 장치를 통해 운명과 선택, 욕망과 허상을 다각도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숭이 발>은 세 가지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별다른 노력없이 그저 말만 하면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원숭이 발>을 접하면 좋을 것이다.
단순한 주제로 쓴 단편소설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긴장과 두려움을 안기는 묘한 분위기 덕분이다. 소설을 읽다가 원숭이 발이 내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듯, 오싹한 공포와 불쾌감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소설은 화이트 씨 부부와 아들 허버트의 평범한 집안 풍경으로 시작한다. 아들과 체스를 두고 있을 때 20년 전 상점에서 함께 일했던 모리스 씨가 찾아온다. 우람한 체격의 특무상사로 변신한 모리스 씨는 다른 나라의 낯선 풍물과 사람들, 대담무쌍한 모험, 전쟁과 역병에 대해 얘기하면서 슬쩍 원숭이 발이라는 미끼를 던진다. 세 식구가 원숭이 발을 덥석 물자 모리스 씨는 “마술 나부랭이죠. 평범하고 조그만 발이죠. 말린 것입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다. 사람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고, 운명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불행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어떤 승려가 ‘원숭이 발에 주문을 걸어놓았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화이트 씨 가족은 “세 사람이 각자 세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말입니다”라는 말에 귀가 쫑긋한다.
소개를 마친 모리스 씨는 원숭이 발이 이미 두 사람에게 불행한 일을 많이 일으켰다면서 불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화이트 씨가 급히 그것을 꺼냈고 모리스 씨는 “무슨 일이 생겨도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당신의 세 가지 소원은 무엇인가?
세 식구는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하다가 시험 삼아 “200파운드를 달라”고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들 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오고, 아들이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보상금이 200파운드라는 말을 한다. 원숭이 발의 저주 앞에서 부부는 망연자실한다. 장례식이 끝난 뒤 아내는 두 번째 소원을 말한다. 아들이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고.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아내가 달려 나갈 때, 죽은 아들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린 화이트 씨가 세 번째 소원을 말한다. 세 번째 소원은 무엇이고 소설은 어떻게 끝날까?
‘세 가지 소원’은 우리나라 민담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전되는 이야기 속의 단골 소재다. <원숭이 발>은 많은 작가들이 패러디했고 만화, 게임 등에서도 계속 차용되고 있다. 스티븐 킹도 이 이야기의 모티브를 빌려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라는 단편을 썼다.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원숭이 발은 미신이나 요행에 기대봐야 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요동치는 세상에 불안과 공포가 넘실대지만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