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을 발행해 군자금을 조달하면 전쟁 수행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어요.
채권의 발달과 진화는 국가가 견인필요한 자금을 타인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채권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회사 등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 조달이 필요할 때, 투자자에게 발급하는 유가증권을 의미한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돈을 빌릴 때 자신이 얼마만큼의 돈을 빌렸고, 언제까지 자금을 사용하다 이자와 함께 돌려줄 것임을 표시한 일종의 차용증서가 채권인 것이다. 이런 채권의 탄생은 자금 공급 조달 측면에서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은행 대출 이외에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채권은 오늘날 주식과 함께 가장 일반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자 일상적인 금융투자상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채권과 주식은 다양한 측면에서 상반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주식은 일반적으로 회사만 발행이 가능한 데 반해 채권은 회사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등이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식이 회사의 발달과 함께 진화해왔다면, 채권의 발달과 진화는 국가가 견인해왔다.
채권발행으로 전쟁 기간중 군자금 조달
그렇다면 국가는 왜 채권 발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세금으로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는 중에는 군비 조달 등에 막대한 추가비용이 유발된다. 하지만 세금은 일상적인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또한 세금이란 일단 국가에 내고 나면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할 경우 전쟁에 대한 국민적 동의마저 얻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채권은 다르다. 채권 발행으로 군자금을 조달하면 전쟁 수행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역시 국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자금 모집도 용이하다. 국가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많은 전리품을 얻기 때문에 이들 전리품을 이용해 채권을 갚을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전쟁 시 세금보다 채권 발행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많은 역사적 현장 속에서 전쟁 수행 시 채권을 발행한 사례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14~15세기 중세 이탈리아 도시인 피렌체, 피사, 시에나와 같은 국가는 서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 도시국가는 자국 시민만으로는 온전한 군대를 조성할 수 없어 용병을 고용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도시 국가는 채권을 발행해 용병 고용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남북전쟁에서 남부측이 패배한 이유
19세기 초부터 세계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 역시 나폴레옹 황제를 대상으로 한 영국 정부의 채권 발행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전쟁 중에는 영국의 군자금 조달과 지급을 도와주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었으며, 영국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영국 국채를 팔아 큰돈을 벌기도 했다.
남북전쟁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측은 전쟁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신들의 면화를 담보로 한 채권을 유럽인을 대상으로 발행했다. 당시 많은 유럽인은 미국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면화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적극 투자했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북부군이 남부 측의 면화 생산 및 수출 요충지를 점령했다. 그러자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투자한 많은 유럽인은 이자를 지급받지 못할 경우 받기로 한 면화를 제대로 수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남부 측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채권 발행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급하지 못했고, 결국 전쟁에서의 패배로까지 이어졌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