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등 신흥국서 달러 탈출 현상
'트럼프 발작(Trump tantrum)' 신조어도
일부 국가에선 외환위기 재발 우려도
◆트럼프와 글로벌 경제'트럼프 발작(Trump tantrum)' 신조어도
일부 국가에선 외환위기 재발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아시아·신흥국 등의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자금 탈출이 일어나고 있다. 불확실성 증가로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데다 강(强)달러 신호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와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인 지난달 10일부터 3주간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70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른다. -12월 5일 한국경제신문 ☞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후 세계 금융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트럼프 발작(Trump tantrum)’으로 불리는 이 변화는 △채권 금리 상승 △신흥국의 달러 유출 △신흥국 통화가치 약세 및 달러 강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 탠트럼’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자.
초저금리 시대 저무나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채권 금리는 급등세를 보였다. 미 대선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당선 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탓에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돈이 몰려 금리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전문가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 트럼프가 당선되자 채권 금리는 크게 출렁였다. 선거일인 11월8일 연 1.85%였던 3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4일 2.24%까지 올라갔고, 연 2.62%였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00%로 상승해 거래됐다.
독일 국채(10년 만기 기준)도 미 대선 전 연 0.19%에서 14일 0.32%로 올랐고, 30년 만기 금리는 5월 이후 처음으로 1% 위로 상승했다. 일본 국채 금리는 -0.07%에서 0.00%로 올라 9개월 만에 마이너스에서 벗어났다. 한국 국채 금리도 오름세를 보였다. 3년 만기 한국 국채 금리는 지난달 9일 연 1.40%에서 지난 5일 현재 1.75%로 올랐다.
이처럼 채권 금리가 출렁거리자 세계 채권 투자자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채권은 금리가 상승 추세일 경우 매매에서 손실을 입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5일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채권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은 1조5000억달러(약 175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은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지난달 21일 국고채 1조27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한은이 국고채를 사들인 건 2008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금융위원회도 채권시장안정펀드라는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모두 금리 급등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리가 오르면 소비와 투자가 억제된다. 또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달한 까닭에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 13조원가량 늘어나게 된다.
신흥국 달러 유출·통화 약세
미국 금리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유동성 흐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신흥국으로 몰려들던 달러화가 이제 신흥국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인 지난달 10일부터 3주간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70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른다. 신흥국 주식펀드와 채권펀드에서 각각 73억달러, 97억달러가 순유출됐다. 아시아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가장 많았다. 경제전문 뉴스통신사인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한 달여간 한국 인도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7개국 주식시장에서 모두 86억5300만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처럼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신흥국의 통화가치도 일제히 급락했다. 달러가 유출되면 달러화 가치가 오르고 신흥국 통화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멕시코 페소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브라질 헤알화, 터키 리라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한국 원화, 칠레 페소화, 아르헨티나 페소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유로, 엔, 파운드 등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달러인덱스)는 100을 넘어섰다. 1973년 3월 당시의 달러 가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달러는 선진국으로 몰렸다. EPFR에 따르면 11월10일부터 3주에 걸쳐 선진국 주식펀드로 410억달러가 순유입됐는데 이 중 북미 주식펀드로의 유입액이 408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본경제신문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시아로부터의 자금 탈출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노믹스’가 원인 … 진퇴양난 신흥국들
세계 채권 금리는 그동안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왔다. 그런데 트럼프의 당선 이후 왜 갑자기 금리가 뛴 것일까? 그건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운 경제정책(트럼프노믹스)과 관련이 깊다.
트럼프노믹스는 공공지출 확대와 감세가 핵심이다. 1조달러 규모를 공공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는 한편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15%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39.6%에서 33%로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 씀씀이는 늘리는데 거기에 필요한 세금을 덜 거둔다면 정부의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면 금리가 뛰게 된다. 또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가 유발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대선 기간 초저금리를 옹호한 재닛 옐런 Fed 의장을 비난했다. 마지 파텔 웰스파고자산운용 매니저는 “트럼프 당선으로 장기간 지속된 금리 하강기가 끝나갈 가능성도 제기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금리가 뛰면 고금리를 좇아 외국으로 나갔던 달러화가 미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외국과의 교역에서 오랫동안 적자가 쌓인 일부 나라의 경우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달 터키가 기준금리를 연 7.5%에서 8.0%로 인상하고, 멕시코도 4.75%에서 5.25%로 올린 건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금리도 뛰어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고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 멕시코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백지화하고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최고 3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