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기업이 어떤 재화의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려고 할 때, 그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기업이 세운 목표 이윤의 달성이나 경쟁사의 제품 가격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도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가격을 내려 많이 판매하는 것이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매출량이 조금 줄더라도 값을 올려 비싸게 파는 것이 ‘이윤 극대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 ‘탄력성(e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일찍이 고안해냈다. 원래 탄력성은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질 때 물체의 모양이나 부피가 변화하고 그 힘이 사라지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성질을 말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물리학의 개념을 차용해 가격이 변화할 때 소비자의 수요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탄력성, 좀 더 정확히 말해 ‘수요의 가격탄력성’이라고 부른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수요량의 변화율을 가격의 변화율로 나눠 구하는데, 숫자 ‘1’을 기준으로 탄력과 비탄력으로 구분된다. 즉, 탄력성이 1보다 큰 경우는 가격이 1% 변화할 때 수요량이 1%를 초과해 변한다는 뜻으로, 이런 재화는 탄력적이라고 한다. 반면 탄력성이 1보다 작으면 가격의 변화율에 비해 수요량의 변화율이 작은 경우이고, 해당 재화는 비탄력적이 된다.이러한 탄력성에 대한 정보가 기업에 중요한 이유는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탄력성에 따라 가격에 변화를 주면 이윤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력적인 재화는 가격 변화폭보다 수요량 변화폭이 크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로, 이 경우 기업은 상품 가격을 인하하는 편이 낫다. 수요가 탄력적인 상품은 값이 오르면 가격 변화량보다 수요량 감소가 크게 나타나지만, 값을 내리면 수요량 증가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면 상품이 비탄력적이면 정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즉, 상품이 비탄력적이라는 것은 가격 변화량보다 수요량 변화가 작다는 의미로, 가격 변화가 수요량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생필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일회용 기저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상품이다. 하지만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기저귀를 살 필요는 없다. 아이의 대소변을 충분히 처리할 정도의 양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기저귀 사용을 포기하기 어렵다. 대신할 물건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천기저귀를 사용하자니 불편하고 세탁비를 고려하면 경제적으로도 손해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회용 기저귀는 가격이 다소 올라도 수
량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 경우 기업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상품 판매에 탄력성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이자 위대한 수학자로 불렸던 탈레스(Thales)가 바로 그 주인공일지 모른다.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밀레토스에서 태어난 탈레스는 기하학(geometry)을 최초로 정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일찍이 지름에 의해 원이 이등분 된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가 같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닮은꼴 삼각형의 원리를 이용해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아낸 것도 그였으며, 천문학에도 능통해 일식을 정확히 예측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아마도 올리브 장사를 통해 그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일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올리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식물이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를 있게 한 여신 아테나가 그리스인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선물한 신성한 식물인 동시에 비둘기가 물고 있는 평화의 상징이자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월계관의 재료로 승리와 명예를 의미하는 것이 올리브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리브는 그리스의 국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와 올리브는 따로 떼어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올리브를 기름으로 만들어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탈레스가 살던 시대에는 올리브의 쓰임새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리스에서 ‘황금의 액체’로 불리던 올리브는 식재료로 사용된 것은 물론이고 열매를 짜 얻은 기름은 밤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치료용 약품이었으며, 종교나 정치적인 의식에서는 신성함과 경건함을 더하는 도구였다. 즉, 그리스인들에게 올리브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던 셈이다.
철학자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던 탈레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올리브가 반드시 필요한 그리스 문화의 특성상 가격이 올라도 수요량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확신한 것이다. 탈레스는 자신의 온갖 지식을 동원해 올리브 농사 주기를 파악하는 데 열중했다. 그리고 흉년이 든 이듬해 풍년이 올 것을 예상하고 올리브 기름을 짜는 데 필요한 착즙기(extractor)를 모조리 사들였다. 흉년이 들어 필요 없어진 착즙기를 헐값에 팔아넘긴 아테네 사람들은 풍년이 들자 탈레스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판 금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착즙기를 빌려야 했고, 탈레스는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탄력성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잘 활용하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탄력성이 기업에서만 활용되는 경제 개념은 아니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공공요금을 올려야 할지 내려야 할지를 결정할 때 또는 세금을 얼마나 부과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도 탄력성은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탈레스의 지혜가 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에도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