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성 “학생들에게 주도적 결정권을 줘야 한다”
○ 반대 “비현실적 주장으로 사교육비 부담만 더 늘어난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내년부터 관내 고교의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29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학생들에게는 급격히 변화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창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수십년간 지속된 입시위주, 성적위주 경쟁적 교육이 야자라는 이름의 비인간적, 비교육적인 제도를 만들어냈다며 더 이상 학생들을 비교육적 틀 속에 가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은 비록 ‘자율적’ 폐지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반대 “비현실적 주장으로 사교육비 부담만 더 늘어난다”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 교육감의 주장이다. 그는 “2017년부터 자율적 ‘야자’ 폐지로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결정하고 만들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자기완성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자 폐지 후 대안도 제시했다. “하나의 계획으로 대학과 연계해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와 관심분야를 스스로 찾고 자신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예비대학 교육과정(가칭)’을 추진하겠다”며 “이외에도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교육감은 “야자 폐지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제안해 전국적인 교육시스템 변화에 나서겠다”며 “대체 프로그램에는 경기·서울 외곽에 있는 모든 대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교육부의 지원과 참여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한국교총과 달리 야자 폐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교육계는 지난 수십 년간 야간 자율학습의 교육 방법론적 미비점을 인지하고도 마땅한 현실적 대안이 없어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며 “발전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만 서두르지 말고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한 네티즌은 “야자는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선택하도록 결정권을 줘야 한다. 전근대적인 제도인 야자 폐지에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 반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야자 폐지에 신중한 입장이다. 교총은 ‘이 교육감의 야자 일률 폐지 방침에 대한 입장’을 통해 “학
생, 학부모, 교원은 물론 교육계 안팎의 논란을 가져올 교육 정책은 교육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이에 따른 세부 대책 마련이 된 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자율 폐지라고 하지만 사실상 학교 재량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한 고교교사는 “야자 시행 여부는 학교가 결정할 일인데, 교육감이 나서서 ‘전면 폐지’를 추진하는 건 지나친 영향력 행사”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인사권·재정권·감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육감이 압박하면, 학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며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 없이 힘의 논리에 의해 졸속으로 교육 제도나 정책이 결정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학부모 중에도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학부모는 “사춘기 학생들은 아무래도 학교의 통제가 필요한데 그 울타리가 사라진다면 학부모로서는 학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 그렇다면 결국 공교육이 앞장서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꼴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그렇지 않아도 학원비 마련이 녹록지 않은데 야자를 폐지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며 “야자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이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었다. 한창 대입공부에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예비대학 교육과정을 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한 얘기라는 반응도 있다.
○ 생각하기
"학생들에게 진정한 자율 학습권부터 돌려줘야"
야자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선 관련된 단어들이 상당히 상호모순적인 게 많다는 점부터 눈에 띈다. 자율 학습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를 폐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요 말이 안된다. 더 웃긴 것은 야자를 폐지한다고 해놓고 폐지를 자율적으로 폐지하겠단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자율이고 타율인지 온통 헷갈릴 뿐이다.
우리 교육 현장의 각종 제도 중에는 이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붙여진 이름과 실제 운용상에는 엄청난 차이와 괴리가 존재한다. 사실 야자를 둘러싼 논란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말로는 자율학습이었지만 실제로는 학교가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실상 강요를 없애기 위해 교육감이 또 다른 강요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는 정답도 왕도도 없다. 교육부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방과 후 학습에서 완전한 선택권을 주는 것만이 교육 정상화에 그나마 접근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