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25)
국회가 초대 대통령 선출제헌 헌법은 제1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짧은 문장에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 있지요. 우선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라는 점입니다. 또 우리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이며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통치하는 ‘공화국’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제헌 이래 지금까지 헌법이 아홉 차례 고쳐졌지만 이 제1장 제1조의 글귀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였습니다. 하지만 제헌 국회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기로 정했지요. 7월20일 국회는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이승만은 재석의원 196명 가운데 180명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때 또 다른 후보였던 김구는 13표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부통령은 임시 정부에서 일했던 이시영이, 국무총리는 광복군으로 활약했던 이범석이 뽑혔습니다. 정부 각 부처의 장관이 정해졌고 국회의장에는 신익희가 선출되었습니다. 또 국회는 김병로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로써 3권 분립 원칙에 따른 입법부·행정부·사법부 3부의 요인이 다 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동안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라 안팎에서 애쓰던 사람들의 손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1948년 8월15일, 이날은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입니다. 서울 세종로에 있던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지금은 해체되어 독립기념관에 그 일부만 남아 있는 ‘중앙청’이라는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였지요. 조선총독부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핵심 관청이었기 때문에 이 건물에서의 건국 기념식은 더욱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 밤 12시를 기해 미 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자주독립 국가가 된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 선거 전에 헌법 만들어
이 무렵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물론 그들은 정부 세울 준비를 훨씬 이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남한에서 5·10 선거도 치르기 전인 4월에 헌법을 만들고 있었지요. 인민위원회가 헌법 초안을 채택했을 때 평양에서는 남북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 통일 정부에 대한 일을 협의하자고 해놓고 자기들은 따로 정부 세울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먼저 정부 수립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은 분단의 책임을 남한 정부에 떠넘기기 위해서였지요. 남한의 상황을 엿보던 북한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부지런히 정부 세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6월29일에는 제2차 남북지도자협의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남한의 좌익 세력 대표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남북한에 걸친 선거를 치러 통일 정부를 만들자고 의결했습니다. 이미 치른 5·10 선거는 무효화하자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그들은 남한에서도 선거를 치렀습니다. 물론 좌익 세력끼리 비밀리에 진행한 지하 선거였지요. 그들은 좌익계 주민들에게 비밀리에 찾아가 미리 정해진 인민 대표를 지지한다는 도장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으로 뽑힌 남한 대표 360명이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습니다. 남북한 합쳐 총 752명으로 구성된 조선최고인민회의는 9월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정식 채택했습니다.
북한의 헌법은 주권이 인민에게 있으며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언론·출판 결사 집회의 자유도 보장된다고 하였지요. 하지만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는 것은 최대의 죄악이며 엄중한 형벌에 의해 처단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껏 북한의 많은 사람이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잔학하게 처형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UN 총회 48 대 6으로 대한민국 승인
조선최고인민위원회는 김일성을 만장일치로 수상에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이 공화국이 남북한 전체의 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남북한에서 선거에 의해 뽑힌 대표들이 만든 정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몰래 치른 선거로 뽑은 대표가 남한 주민의 뜻을 대신한다고 볼 수는 없지요.
1948년 12월 UN 총회 결과 48 대 6이라는 압도적 다수가 대한민국을 승인했습니다. 이후 자유 진영 국가들이 줄지어 대한민국을 승인했습니다. 북한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 국가들의 승인을 받았지요. 하지만 북한은 UN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은 UN 총회 결의에 따라 적법하게 세워진 나라이며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나라입니다. 황제의 나라였던 대한제국도, 목숨을 걸고 일본에 저항하여 만든 임시 정부도 국가로서, 정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UN의 승인은 우리 역사의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때 60개 나라가 우리나라를 도운 것도 UN 총회가 대한민국을 승인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한 덕분입니다.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