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오는 23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 투표를 하기로 한 가운데, 막판까지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붙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마다 찬성 우세와 반대 우세가 엇갈린다. 2013년 총선에서 브렉시트 투표를 공약으로 내걸어 총리에 당선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원래 브렉시트 찬성론자가 아니다. 그는 브렉시트를 유럽연합(EU)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 정도로 생각했다. 문제는 이후 주요 언론과 각국 수장, 경제 관계자들이 브렉시트가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찬성론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더 세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41년 만에 두 번째 탈퇴 투표
영국과 EU 관계는 줄곧 매끄럽지 않았다. 1957년 프랑스와 서독 등 6개국이 로마조약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을 추진할 때부터 영국은 빠져 있었다. 1963년 뒤늦게 EEC 가입을 타진했으나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은 유럽의 계획에 뿌리 깊은 적개심을 갖고 있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영국은 드골이 퇴임한 뒤 1973년에야 EEC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입하자마자 탈퇴를 논하기 시작했다. 1975년 해럴드 윌슨 총리(노동당)는 EEC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3분의 2가 잔류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없던 일이 됐다.
EEC 회원국들은 1979년부터 유로화의 전 단계인 공동 환율 시스템(ERM)을 도입했고, 영국은 1990년 합류했다. 그러나 1992년 9월 금융시장이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크게 흔들린 ‘검은 수요일’이 발생하자 영국은 다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 유로화가 도입됐지만 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고수했다. 이후에도 편치 않은 관계가 이어졌다. 캐머런 총리는 2011년 EU가 은행세를 도입하고 런던 금융가를 규제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EU에서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으론 큰 손실
찬성파도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유를 내세우긴 한다. 영국이 내는 EU 분담금은 지난해 180억파운드(약 30조원)에 달했다. 혜택을 받는 점을 감안해도 90억파운드(약 15조원)는 손해라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이걸 영국인의 복지에 쓰면 훨씬 좋으리라는 셈법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따져보면 경제적으로 브렉시트는 손실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로 2030년 기준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10~20%까지 떨어질 것”(폴 홀링스워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브렉시트는 영국 경쟁력의 주요 원천인 금융가에는 그야말로 ‘폭탄’이다. 영국은 그간 EU 회원국이자 비(非)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으로서 다른 EU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 규제가 까다롭지 않았다. 브렉시트가 일어나면 이 같은 이점이 사라지게 돼 런던에 집결한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들이 근거지를 옮길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브렉시트를 하면 영국서 3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체성 위협이 찬성론 배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중동부 해안가에 있는 소도시 ‘헐’의 사례를 통해 돈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브렉시트를 원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FT에 따르면 EU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를 받아들인 2004년부터 영국에는 이민자가 크게 늘었다. 헐에도 3만여명이 들어왔다. 2002년까지 헐은 쇠락해 가는 도시였기 때문에 이민자 증가는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줬다. 버려진 낡은 집에 사람이 살게 됐고, 이면도로에 가게가 생겼다.
그러나 이민자 비중이 열 명 중 한 명까지 늘어난 것에 헐 주민들의 반감은 작지 않다. 저임금 노동자 증가로 임금이 오르지 않고, 집값이 오르는 것도 반감의 원인이다. FT는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일 수 있지만 “내 나라를 돌려달라”거나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공동체였다”는 식의 찬성론자들의 구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은 / 박진우 기자 selee@hankyung.com
41년 만에 두 번째 탈퇴 투표
영국과 EU 관계는 줄곧 매끄럽지 않았다. 1957년 프랑스와 서독 등 6개국이 로마조약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을 추진할 때부터 영국은 빠져 있었다. 1963년 뒤늦게 EEC 가입을 타진했으나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은 유럽의 계획에 뿌리 깊은 적개심을 갖고 있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영국은 드골이 퇴임한 뒤 1973년에야 EEC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입하자마자 탈퇴를 논하기 시작했다. 1975년 해럴드 윌슨 총리(노동당)는 EEC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3분의 2가 잔류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없던 일이 됐다.
EEC 회원국들은 1979년부터 유로화의 전 단계인 공동 환율 시스템(ERM)을 도입했고, 영국은 1990년 합류했다. 그러나 1992년 9월 금융시장이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크게 흔들린 ‘검은 수요일’이 발생하자 영국은 다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 유로화가 도입됐지만 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고수했다. 이후에도 편치 않은 관계가 이어졌다. 캐머런 총리는 2011년 EU가 은행세를 도입하고 런던 금융가를 규제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EU에서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으론 큰 손실
찬성파도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유를 내세우긴 한다. 영국이 내는 EU 분담금은 지난해 180억파운드(약 30조원)에 달했다. 혜택을 받는 점을 감안해도 90억파운드(약 15조원)는 손해라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이걸 영국인의 복지에 쓰면 훨씬 좋으리라는 셈법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따져보면 경제적으로 브렉시트는 손실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로 2030년 기준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10~20%까지 떨어질 것”(폴 홀링스워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브렉시트는 영국 경쟁력의 주요 원천인 금융가에는 그야말로 ‘폭탄’이다. 영국은 그간 EU 회원국이자 비(非)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으로서 다른 EU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 규제가 까다롭지 않았다. 브렉시트가 일어나면 이 같은 이점이 사라지게 돼 런던에 집결한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들이 근거지를 옮길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브렉시트를 하면 영국서 3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체성 위협이 찬성론 배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중동부 해안가에 있는 소도시 ‘헐’의 사례를 통해 돈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브렉시트를 원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FT에 따르면 EU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를 받아들인 2004년부터 영국에는 이민자가 크게 늘었다. 헐에도 3만여명이 들어왔다. 2002년까지 헐은 쇠락해 가는 도시였기 때문에 이민자 증가는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줬다. 버려진 낡은 집에 사람이 살게 됐고, 이면도로에 가게가 생겼다.
그러나 이민자 비중이 열 명 중 한 명까지 늘어난 것에 헐 주민들의 반감은 작지 않다. 저임금 노동자 증가로 임금이 오르지 않고, 집값이 오르는 것도 반감의 원인이다. FT는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일 수 있지만 “내 나라를 돌려달라”거나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공동체였다”는 식의 찬성론자들의 구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은 / 박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