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만든다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영역 침범해선 안돼
'부정한 의도' 추정만으로 처벌하면 헌법에 위반할 우려도
부패방지 관련법들 이미 존재…부패 유발하는 근본원인 제거해야
[테샛 칼럼] 김영란법 문제 있다
인간의 행위는 법과 도덕에 의해 규율된다. 도덕을 일탈하면 비난받지만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는다. 도덕 일탈마저 처벌하고 개인의 사(私)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하면 사회는 더 깨끗해지고 투명해질까.

‘김영란법’으로 일컬어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2015년 3월 재석의원 247명 중 228명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92%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한 법률이지만 시행도 하기 전에 헌법소원이 청구돼 현재 계류 중이다. 김영란법은 국회를 통과한 지 1년6개월 후인 2016년 9월 발효될 예정이다. 19대 국회에서 통과시켰지만 공을 20대 국회로 넘긴 것이다. 김영란법은 명분에 추동되고 여론에 등 떠밀려 깊은 사려 없이 입법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법 시행령은 5월13일 의견 수렴을 위한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시행령은 ‘식사, 선물, 경조사비’ 상한을 정하는 것으로 각각 3만, 5만, 10만원으로 정해졌다. 2만9000원은 되고 3만1000원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면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내수경기가 죽을지 모른다는 자영업자의 항의는 허공에 묻히고 있다. 개인의 소소한 이익에 밀려 ‘부패방지’라는 대의명분을 접어서는 안 된다는 ‘정언적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법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가장 확실한 것 같지만 실패 확률도 높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 인원은 총 224만명으로 추정된다. 취업자 대비 8.6%다. 법 적용을 받는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적용 대상은 취업자 대비 17%다. 그 많은 사람의 개인 활동을 ‘3, 5, 10’에 맞춰 누가 감독할 것인가. 성문법의 가장 큰 비극은 ‘사문화(死文化)’다.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관계없이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처벌하는 구조다. 직무와 무관한 기부·후원·증여를 하고 선물을 받으면 처벌된다. 법 적용 대상자에게 돈을 주면 ‘부정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해악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형사법에서 뇌물죄에 대해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엄격한 구성 요건으로 삼은 것은, 기부·증여 등의 행위가 계약의 일종으로 재산권 행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입법 계기는 소위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범죄가 은밀화·지능화해 업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의 사정일 뿐이다. 수사능력을 배양해야지 처벌 대상 행위의 외연을 넓혀서는 안 된다. 이런 논리라면 폭력을 단속하기 어려우니 덩치가 큰 사람은 외출을 삼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입법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정책 대상을 좁혀야 한다. 공직사회의 부패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제정한 특별법이라면 법 적용 대상은 원칙적으로 공직자여야 한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물타기’가 이뤄졌다. 언론과 사립학교 교원 등이 포함된 것이다. 가관인 것은 선출직 공직자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는 ‘정당한 청원’의 통로이고 여타 공직자는 ‘부정청탁’의 숙주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김영란법은 반부패특별법이다. 하지만 법률과 조직이 부족해 부패가 만연한 것은 아니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 금품수수죄, 이익공여금지죄 등 부정한 돈이 오가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각종 특별법이 운영되고 있다.

국민의 사적인 활동에 과도하게 국가의 형벌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과잉범죄사회에 이르는 길이다. 사법 영역에 비해 공법의 지배력이 커지면 국민의 사(私)영역은 위축되고 국가에 대한 의존이 타성화한다.

부패에 대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부패를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재량적·처분적 규제권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간섭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시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타성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