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미술품 대작(代作) 허용해야 할까요
유명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 씨가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그의 부탁을 받아 그림을 대신 그려왔다는 A모씨가 검찰에 그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씨의 그림 90%를 자신이 대신 그려줬고 조씨는 덧칠하고 사인을 넣어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씨는 몇년 전부터 조수 몇 명을 쓴 것은 맞지만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조수를 쓰는 건 오래된 미술계 관행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을 두고 조씨가 자신이 100% 그리지도 않은 그림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미술계 관행인데 싸잡아 사기꾼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미술계의 소위 대작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대작은 관행으로 조수 고용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조씨 소속사 미보고엔터테인먼트 장호찬 대표는 “작품의 90%를 그렸다는 A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일부 화투 작품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모두 조씨의 창의력이 발휘된 작품들이다.

조씨가 제시한 샘플을 A씨가 그대로 그리거나, 조씨의 밑그림에 A씨가 채색하고, 이를 조씨가 다시 완성하는 식이었다”고 항변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조씨는 “국내외 작가들이 대부분 조수를 쓰고 있으며, 이는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A씨에게 일부 그림을 맡긴 것은 사실이나 이는 지난 3월 개인전에서 전시한 50점 중 6점에 지나지 않는다”며 “A씨의 도움을 받은 그림은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A씨가 밑그림에 기본적인 색칠을 해서 보내주면 다시 손을 봤다”며 “개인전을 앞두고 일정이 많다 보니 욕심을 부린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다.

미술계 일각에서도 “소위 대작은 관행으로 조수 고용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한 언론에 “현대 미술의 범주에서 보면 모든 게 예술로서 가능한 세상이다. 조수를 쓴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술계에서는 해외 유명 작가 중에도 공개적으로 조수 다수를 고용해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든다. 심지어 유명 작가 중에는 “조수가 바뀔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으며 수집가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 반대 "조영남, 관행과 어긋났고 이를 밝히지 않은 것도 문제"

미술계 안에서도 조수를 쓰는 관행이 있는 것은 맞지만 조씨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지적도 나온다. 조수를 활용하는 경우도 보통은 작업실에서 같이 있으면서 대화하고 공감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씨는 서울에 있고 멀리 속초에 있는 조수를 통해 밑그림 대부분을 완성했다는 건 통상적인 조수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조씨가 “원본을 내가 그리고 이를 샘플로 복제시켰다”고 해명한 데 대해 미술계 내에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조수의 도움을 얼마나 빌렸든 그간의 작업 방식을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 TV에 작업 장면을 노출시켜 마치 자기가 혼자서 온전히 그린 것처럼 여겨지게 한 것과 낮은 수수료를 주고 얻는 대작 그림을 시장에 유통시킨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 평론가 홍경한 씨는 한 언론에 “관행이란 말은 대부분 그러하다는 의미여서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조수를 쓰는 경우라면 전시를 앞두고 물리적 여유가 없을 때인데 이를 정기적으로 쓰는 것은 괜찮은가”라고 반문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미니멀리즘이나 팝아트의 작품에선 조수 도움이 필요하지만 조씨의 작품이 그 범주에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작가와 도제의 공동 작업 방식은 미술계의 오랜 전통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고안한 개념과 얼개를 실물 작품으로 구현할 보조자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조씨의 경우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 생각하기 "합리적 협업 범위에 대한 기준 마련해야"

검찰은 대작 논란에 휩싸인 조씨에게 사기죄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면 조씨는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판매한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1992년 미국 판례를 토대로 이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해당 재판은 ‘아메리카 고딕’이라는 중세시대 인물화를 놓고 저작권 분쟁이 벌어진 것인데, 당시 재판부는 의뢰인이 아닌 실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사기죄 적용의 또 다른 판단이자 검찰 수사의 핵심은 대작 작가가 그린 그림을 조씨가 실제로 판단했는지다. 검찰은 조씨의 대작 작품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판매했는지, 판매 액수는 얼마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법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소위 예술인의 대작을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미술계의 관행이라지만 대작이라는 것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 이번 일을 계기로 어느 수준까지를 합리적인 협업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과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