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금지로 꼬인 이웃…'봄바람' 불까?
“Que bola Cuba?”(케 볼라 쿠바·잘 지냈어요 쿠바?)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내 미셸 오바마와 함께 지난 20일 쿠바 수도인 아바나를 찾았다.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것은 전함을 타고 쿠바를 찾았던 캐빈 쿨리지 전 대통령 이후 88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내리기 전 트위터를 통해 쿠바식 스페인어로 ‘Que bola?’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1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피델 카스트로의 동생)과 오바마 대통령은 아바나의 혁명궁전에서 만나 두 시간 넘게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미국과 쿠바가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었으며 경제 분야 등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입을 모았다.
스페인·미국·소련… 강대국에 휘둘린 쿠바
미국과 쿠바는 이웃 나라다. 쿠바는 미국 바로 아래 카리브해에 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쓴다. 이 나라의 근현대사는 미국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스페인이 세계 각국을 점령하며 세를 넓히던 시절, 중남미 지역의 스페인 세력을 꺾기 위해 미국은 스페인 식민지인 쿠바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과 갈등을 빚었고 전쟁도 벌였다. 1898년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2000만달러에 미국에 팔았다. 쿠바는 미국 식민지가 됐다.
1902년 공식적으로 독립했지만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쿠바를 반군이 장악했고 이에 미국이 쿠바를 침공했다. 이후 세워진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폭정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 있는 상황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쿠바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저항의 상징’이 된 아르헨티나인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의 동지로 활동한 시기다. 쿠바 공산화는 바로 쿠바의 앞마당에 있는 미국에 큰 위협이었다. 미국은 쿠바와 단교를 선언했고 경제 제재를 결정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기지를 건립하는 것이 드러나면서 미·소는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는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미국의 금수조치(禁輸: 특정 국가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 물건을 수출입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는 쿠바 경제를 50년 넘게 옥죄었다.
풀기 어려운 문제도 산적
양국 정상은 앞으로 인적 교류, 교육, 무역, 인권, 보건, 과학, 에너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관계를 정상화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봉쇄를 풀겠다곤 했지만 실질적으로 금수조치가 풀리지 않으면 쿠바의 경제적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카스트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금수조치가 해제된다면 더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며 “미국 행정부의 노력은 평가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풀지 못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 의회가 도와줘야 하는데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협조할 의지가 별로 없어서다.
인권문제 놓고 설전도
쿠바의 인권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때 민주주의가 바로 세워지고 표현의 자유와 의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며 “무역과 은행 거래 정상화 등의 성과는 인권 상황이 얼마나 좋아질 것인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스트로 의장은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쿠바 출신 미국인 2세인 미국 CNN 짐 아코스타 기자가 스페인어로 “쿠바에 정치범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카스트로 의장은 “정치범 이름을 대거나 명단을 주면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풀어주겠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나서 “2년 반 동안 수차례 쿠바 정부와 정치범 명단을 공유했다”고 했다. 화해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이런 논란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을 찍을 때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같이 팔을 잡고 손을 들려는 카스트로 의장에게 벗어나려 팔에 힘을 뺐다. 그러나 카스트로 의장이 포기하지 않고 그 팔을 계속 들어올리는 바람에 두 사람이 어정쩡한 모양새로 사진을 찍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 쿠바 야구선수, 미국 메이저리그행 늘어날 듯
야구 강국인 쿠바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자유롭게 뛸 기회를 얻었다. 미국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전인 지난 15일 쿠바인들이 제3국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 기업에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쿠바 야구선수들이 자신의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쿠바 국적을 갖고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다. 미국 의회가 카스트로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통과시킨 쿠바 제재법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쿠바 선수들은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기 위해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곤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메츠의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는 2011년 10명의 가족과 함께 밤중에 작은 배를 타고 23시간 동안 바다를 건너 도미니카공화국에 갔고, 여기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뛴 LA다저스의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는 4번의 탈출 실패를 겪었다. 그는 마지막에 경찰을 피해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30시간 동안 건넌 끝에 미국에 도착했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