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누명으로 사형선고, 탈옥중 죽은 흑인 톰…순수한 아이들이 깨뜨리는 백인우월주의
미국 고등학생들의 필독서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누명으로 사형선고, 탈옥중 죽은 흑인 톰…순수한 아이들이 깨뜨리는 백인우월주의
100주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2년 만에 500만 권 이상이 팔린 작품.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것은 물론 성경 다음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바꿔놓는 데 이바지한 책. 지난 2월19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하퍼 리가 쓴 ‘앵무새 죽이기’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작품은 그녀가 34세였던 1960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1961년 소설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2000년 온라인 도매회사 ‘플레이 닷컴’이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을 조사했을 때 ‘앵무새 죽이기’가 1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여전히 미국 고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들어있다. 첫 번 째 작품이 세계 40여 개 국에 번역되고 출간 56년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건 실로 부럽고도 놀라운 일이다.

변호사 아버지 아래에서 193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하퍼 리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이 ‘앵무새 죽이기’에서 세밀하고 정감있게 펼쳐진다.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1930년대 미국 사회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요즘도 ‘흑인 차별 뉴스’가 나오고 그로 인한 사건이 불거질 정도이니 그 당시는 어떠했겠는가. 여전히 세계가 편견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들끓어 앞으로도 이 작품이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어느덧 다문화 사회로 돌입하여 여러 인종이 함께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 작품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누명으로 사형선고, 탈옥중 죽은 흑인 톰…순수한 아이들이 깨뜨리는 백인우월주의
1930년대 미국 백인사회의 기준

화자이자 주인공인 진 루이즈 핀치는 소설에서 스카웃이라는 별명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는 스카웃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2학년 때까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겪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만약 이 작품의 주인공이 어른이어서 정색하고 정의와 심판을 얘기했다면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스카웃이 오빠 젬과 이웃에 사는 남자친구 딜과 함께 뿜어내는 순수함에 세계 독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스카웃은 변호사 아빠와 네 살 많은 오빠, 돌아가신 엄마 대신 가사를 도맡은 흑인 아줌마 캘퍼니아와 함께 살고 있다. 다정하면서도 정확한 기준을 가진 아빠, 언제나 함께 놀면서 편들어주는 든든한 오빠, 따끔하게 혼도 내지만 요리도 잘하고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캘퍼니아 아줌마, 이들의 지원으로 스카웃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스카웃이 질문할 때마다 공정하게 답하는 변호사 아빠는 다른 백인들과 달리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스카웃과 젬도 아빠의 영향으로 캘퍼니아 아줌마가 다니는 흑인교회 예배에 거리낌 없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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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웃과 젬, 딜의 최대 관심사는 밖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옆집의 부 래들리 아저씨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부 래들리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을 긴장시키는 중요한 존재이다. 곳곳에서 활약하는 부 래들리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이다. 또한 선머슴같은 스카웃에게 숙녀가 되어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고모와 동네 아줌마들, 괴팍스러운 할머니 등 재미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른들의 수다에서 1930년대 미국 백인 우월주의 사회의 풍속도를 읽을 수 있다. 시대를 탐험하고 많은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소설이 가진 강점이다.

소설의 뼈대가 되는 사건에서 누명을 쓴 성실한 흑인 톰 로빈슨, 그 흑인을 변호하는 스카웃의 아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 죄없는 톰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평결을 내리는 배심원들, 흑인을 경멸하며 유죄를 당연하게 여기는 동네 사람들을 통해 소설은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재판을 참관한 스카웃과 젬과 딜은 아빠가 변론하는 내용을 듣고 톰이 무죄라는 걸 알아챈다. 하지만 유죄평결이 내려지고 억울한 톰의 사형언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나는 어떤 편견을 갖고 있나

결국 감옥에 갇힌 톰이 탈출을 하다 총에 맞아 죽고 이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은 흘러간다. 어른들의 부당한 싸움의 불똥이 엉뚱하게 스카웃과 젬에게 튀자 드디어 부 래들리 아저씨가 등장한다. 스카웃은 마지막에 진짜 용감한 사람, 정말 멋진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정의의 편에 선 아빠와 몇몇 어른들이 있어 세상이 점차 발전했다. 모디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애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라고 말해준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아빠의 말이 책 갈피갈피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아빠 말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고 스카웃은 부쩍 성장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서로를 존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쳐 왔는지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더욱 사랑하며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