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
전쟁을 다룬 명작 소설…우리는 왜 없나전쟁을 소재로 삼은 명작 소설은 많이 발표되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독일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개선문》 등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은 무수히 많다.
1950년 발발하여 1953년 휴전한 6·25전쟁은 세계 여러 나라가 참전했고 사상자가 많아 제3차 세계대전에 버금간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과 달리 6·25전쟁 뒤에는 세계인이 함께 읽는 대작이 나오지 않았다.
월드컵 4강, 올림픽 10위권, K팝의 세계화, 기능올림픽 우승, 세계적인 음악콩쿠르 우승 등 속속 들려오는 승전보 속에 문학은 제외되어 있다. 오히려 문단의 권력화와 유명 작가 표절사태로 시끄럽기만 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했으나 한국은 감감무소식인 이유에 대한 분석도 분분하다.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이 늦었다, 이념 대립이 심한 가운데 지나치게 어둡고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다, 국력이 약했다’ 등 여러 얘기가 많은데 점차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1차대전 소재…2000년 출간된 소설
오늘 소개하는 《처절한 정원》은 세계적인 전쟁 명작들보다 훨씬 늦은 2000년 출간된 소설이다. 서두에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으며 광부였던 할아버지와 레지스탕스 요원이었으며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을 겪지 않은 아들이 쓴 소설이다. 작가 미셸 깽은 1949년 출생했다. 프랑스에서 출간할 때 60쪽 정도였는데 한국에서는 작은 판형에 그림을 넣어 100쪽 정도로 제작했다.
이 소설은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틈만 나면 어릿광대로 분장해서 남을 웃기는 아버지를 창피해 하다가 삼촌으로부터 집안의 비밀을 듣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에 삼촌이 전해주는 2차 대전 중에 있었던 이야기가 매우 극적이면서 감동적이다. 체험과 상상, 자서전과 허구를 자연스럽게 뒤섞은 이 소설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와 개인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화자의 아버지와 삼촌은 1942년 말, 1943년 초 레지스탕스 세포 조직에 가담하여 변압기를 폭파한다. 곧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범인 대신 처형될 인질로 잡혀 진흙 구덩이에 갇히고 만다. 어릿광대 출신인 독일 병사가 구덩이에 갇힌 포로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 제비뽑기로 한 명이 뽑혀 총살당하는 상황이었는데 뜻밖에도 진범이 잡혀 풀려난다. 변압기를 폭파한 진범인 아버지와 삼촌은 자신들을 대신해 죽은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그의 아내로부터 감동적인 진실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린다.
대신 죽은 이들이 있음을 알고는…
책을 읽으면서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아버지와 삼촌은 어떻게 견뎠는지, 진범인 아버지와 삼촌 대신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 삼촌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게 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질 것이다.
독일군이 물러간 뒤 아버지는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산다. 아버지가 창피하기만 하던 화자는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꾼다. 책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일이 되면 저는 눈에 검은 칠을 하고 양볼에는 빨간 동그라미를 그릴 것입니다. 내일 저는 밤나무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그 숲에서 마지막 미소를 거둔 그들을 대신하여 존재하려고 합니다”라며 자신도 어릿광대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처절한 정원》은 출간 후 1년 넘게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대만 등지에 저작권이 팔려나갔다. 프랑스의 판매대리인들이 이 책을 읽은 뒤 전국 서점에 배포하기 시작했고 곧 파리의 서점들이 이 책을 권장도서로 선정해서 큰 인기를 끈 덕분이다. 책이나 영화를 알리는 가장 좋은 광고는 다름아닌 ‘입소문’이다. 파리 페스티벌에서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소설’로 선정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영화제작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설
책이 유명해지는 데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이 책이 나오기 직전인 1999년 10월 프랑스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모리스 파퐁의 재판으로 떠들썩했다. 파리 경찰국장, 예산장관 등 고위 관리로 떵떵거리며 살던 모리스 파퐁이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590명의 유대인을 체포하여 죽음의 아우슈비츠수용소로 보냈다는 것이 밝혀져 16년간의 긴 재판 끝에 형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과 맞물려 《처절한 정원》이 주목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소설은 전쟁을 다루면서도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어둡지 않고, 짧지만 깊은 울림을 안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즘 6·25전쟁을 소재로 한 감동적인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세계인이 함께 읽을 명작 소설도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근미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