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In Life] 집단 안에는 폭력·잔혹함·두려움이 작동한다…니체 "너는 너여야 한다…위대한 혼자" 강조
루터는 교황이 특별 공격대를 보내 자신을 암살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신과 세상에 대한 손톱만큼의 다른 생각도 인정하지 않고 불에 태워 죽였던 로마 가톨릭의 잔혹한 권력은 민중이라는 떼와 결합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떼의 근성 안에는 폭력과 잔혹함이 존재한다. 떼의 원동력은 두려움이다. 박성현은 이 두려움이 종종 질투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발휘되는지를 역사에서 발굴한다.

“‘키 큰 양귀비 신드롬’은 부와 명예를 가진 인간들에 대한 질투심이기도 하고, 그러한 질투심을 이용한 포퓰리즘을 뜻하기도 한다. 이 용어는 기원전 509년 로마가 공화국이 되기 직전, 폭군 타르킨에 얽힌 이야기에서 나왔다. 타르킨은 아들 섹스투스를 ‘가비’라는 경쟁 도시국가에 거짓으로 투항시켰다. 가비 사람들은 섹스투스가 폭군인 아버지로부터 박해를 받아 투항했다고 믿고 군대 지휘권을 주었다. 섹스투스가 전령을 아버지에게 보내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묻자 타르킨은 전령을 양귀비 밭에 데려가서 홀(笏, 지휘봉)로 양귀비 중 키가 큰 것을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령으로부터 아버지의 행동을 들은 섹스투스는, 가비의 서민 대중이 상류층에게 가지고 있는 질투심과 두려움을 교묘히 부추겨 상류층을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박성현
박성현
타르킨의 방법론을 현대에서 구현한 인물이 소련의 즈다노프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동구권을 사회주의로 만들기 위해 인민민주주의라는 괴물을 고안한다. 박성현의 표현에 따르면 ‘질투심의 연쇄반응 프로세스’인 인민민주주의는 먼저 최상위 계층을 타깃으로 삼아 부농과 중소 상공업자의 질투심을 부추긴다. 떼의 질투심으로 최상위 계층을 쓸어버린 뒤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부농과 중소 상공업자를 숙청한다. 그리고 그 다음 타깃은 농민 중 부유한 계층이다. 즈다노프는 이런 식으로 상위 계급을 쳐내면서 공산당이 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 즈다노프의 사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슈티코프다. 슈티코프는 장인의 방식을 그대로 활용해 김일성 전체주의 제국을 건설했다. 박성현은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는 개인에 대한 박해의 역사였다. 어떨 때는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떨 때는 권리와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떨 때는 정치권력 강화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개인은 가차 없이 박해당하고 학살당했다. 떼가 박해에 나설 때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위장한다. 평등, 평화, 자유, 민중, 국민, 민족, 계급, 신앙, 권력, 정당. 심지어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 이성과 논리와 도덕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기적은 각자 안에 존재한다

떼와 대립하는 개인에 대한 철학을 박성현은 얀 후스에게서 시작한다. 후스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 결과로 후스는 불길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후스의 죽음이 있었던 1415년부터 루터의 반박문 사건을 거쳐 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개의 주요 세계관 사이의 대화》가 출간되기까지의 220년 동안을 박성현은 개인과 과학(진실의 공유)이 약진해온 시기라면서 ‘후스 220’이라고 명명한다.

[Books In Life] 집단 안에는 폭력·잔혹함·두려움이 작동한다…니체 "너는 너여야 한다…위대한 혼자" 강조
그 선구자들의 시대를 이은 것이 각성의 시대다. 모차르트와 애덤 스미스와 로크와 흄과 데카르트와 볼테르와 뉴턴 그리고 칸트의 시대다. 각성의 시대는 개인이 만개한 시대였고 과학이 미신을 혁파한 시대였다. 칸트는 ‘인간은 목적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이성을 갖춘 자아를 추구했다. 그리고 화려했던 각성의 시대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라는 ‘떼의 피난리’에 주저앉는다. 그 난리는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고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파시즘과 볼셰비즘이라는 극악한 전체주의 사회를 낳았다. 전체주의를 옹호하거나 혹은 그로부터 이익을 찾으려는 자들은 항상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떼에게 거짓으로 호소한다. “갈아엎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니까. 자, 다들 일어나. 봉기하라고!”

여기에 대한 박성현의 대답은 이렇다.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감히 세상 따위가 구원해 낼 수 있는’ 싸구려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을 구원하는 훌륭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만, 위선, 횡포, 폭력으로 치닫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이라는 개념이 바로 전체주의 사상의 기둥이다. 그 기둥에 매달린 깃발이 볼셰비즘이든 나치즘이든 모택동주의든 김일성주의든 체 게바라이든, 그 차이는 미미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남정욱 숭실대 교수
남정욱 숭실대 교수
자아가 세상과 긴장 상태를 상실할 때 그것은 자아가 병들었다는 의미다. 박성현은 이를 ‘행복한 전체주의 세상의 행복한 부속품’이 된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탄생도 까다롭고 성장하기 위한 조건도 까다로운 존재의 이름이 개인이라고 확언한다. 아울러 개인 자체가 기적이며 궁극적 기적은 한강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덧붙임까지. 책의 두 번째 챕터는 이렇게 끝난다.

“이 기적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너인 존재가 되어라 Become what you are’.” 떼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말고 항상 너는 너여야 한다는 멋진 말이다. 이 말에 한 줄 더 붙인다면,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모든 자유주의자들을 대신해 시인 기형도가 한 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교수님은 이렇게 물으셨다. “졸업 논문 잘 보았네. 바쁘신 와중에 고생했네.” “학생의 본분이죠. 어떻던가요?” “내용상 완벽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일세.” 1980년대는 총체적으로 코미디였다.

남정욱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