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46) 박성현의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하)
(46) 박성현의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하)
![[Books In Life] 집단 안에는 폭력·잔혹함·두려움이 작동한다…니체 "너는 너여야 한다…위대한 혼자" 강조](https://img.hankyung.com/photo/201512/AA.10931257.1.jpg)
“‘키 큰 양귀비 신드롬’은 부와 명예를 가진 인간들에 대한 질투심이기도 하고, 그러한 질투심을 이용한 포퓰리즘을 뜻하기도 한다. 이 용어는 기원전 509년 로마가 공화국이 되기 직전, 폭군 타르킨에 얽힌 이야기에서 나왔다. 타르킨은 아들 섹스투스를 ‘가비’라는 경쟁 도시국가에 거짓으로 투항시켰다. 가비 사람들은 섹스투스가 폭군인 아버지로부터 박해를 받아 투항했다고 믿고 군대 지휘권을 주었다. 섹스투스가 전령을 아버지에게 보내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묻자 타르킨은 전령을 양귀비 밭에 데려가서 홀(笏, 지휘봉)로 양귀비 중 키가 큰 것을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령으로부터 아버지의 행동을 들은 섹스투스는, 가비의 서민 대중이 상류층에게 가지고 있는 질투심과 두려움을 교묘히 부추겨 상류층을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는 개인에 대한 박해의 역사였다. 어떨 때는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떨 때는 권리와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떨 때는 정치권력 강화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개인은 가차 없이 박해당하고 학살당했다. 떼가 박해에 나설 때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위장한다. 평등, 평화, 자유, 민중, 국민, 민족, 계급, 신앙, 권력, 정당. 심지어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 이성과 논리와 도덕성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기적은 각자 안에 존재한다
떼와 대립하는 개인에 대한 철학을 박성현은 얀 후스에게서 시작한다. 후스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 결과로 후스는 불길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후스의 죽음이 있었던 1415년부터 루터의 반박문 사건을 거쳐 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개의 주요 세계관 사이의 대화》가 출간되기까지의 220년 동안을 박성현은 개인과 과학(진실의 공유)이 약진해온 시기라면서 ‘후스 220’이라고 명명한다.
![[Books In Life] 집단 안에는 폭력·잔혹함·두려움이 작동한다…니체 "너는 너여야 한다…위대한 혼자" 강조](https://img.hankyung.com/photo/201512/AA.10902117.1.jpg)
여기에 대한 박성현의 대답은 이렇다.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감히 세상 따위가 구원해 낼 수 있는’ 싸구려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을 구원하는 훌륭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만, 위선, 횡포, 폭력으로 치닫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이라는 개념이 바로 전체주의 사상의 기둥이다. 그 기둥에 매달린 깃발이 볼셰비즘이든 나치즘이든 모택동주의든 김일성주의든 체 게바라이든, 그 차이는 미미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이 기적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너인 존재가 되어라 Become what you are’.” 떼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말고 항상 너는 너여야 한다는 멋진 말이다. 이 말에 한 줄 더 붙인다면,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모든 자유주의자들을 대신해 시인 기형도가 한 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교수님은 이렇게 물으셨다. “졸업 논문 잘 보았네. 바쁘신 와중에 고생했네.” “학생의 본분이죠. 어떻던가요?” “내용상 완벽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일세.” 1980년대는 총체적으로 코미디였다.
남정욱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