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의 인기가 치솟는 중이라고 한다. ‘네이버 웹소설’ 출시 2주년을 맞아 네이버가 콘텐츠 현황을 발표했는데 2014년 한 해 동안 글을 올린 작가가 6만7000여명에 달했다. 작품은 12만건이 넘었다. 작품당 평균 조회 수가 약 2900만회라니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대학에서 소설창작 강의를 하면서 판타지·추리·호러·로맨스 같은 장르소설에 심취한 미래의 작가가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난주 수업에서는 주문 제작한 아기를 키우다가 귀찮아져서 결국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비정한 스토리를 다루었다. 오로지 잔인하고 복잡한 스토리로 시선을 끌려는 예비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25전쟁 후 중국인 거리에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단편소설의 진수 오정희 작품 읽으며 작가꿈 키웠다"
소설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향기가 나야 한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문장’이다. 은근한 비유와 비장한 의미를 담은 미학적 문장에 취해 소설 속 인물들과 어느덧 한마음이 되면 어느새 영혼이 풍요로워진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슴 저미는 문장에 줄을 긋고, 주인공들의 절묘한 동선을 따라 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넘겨보려면 아무래도 소설책이 제격이다.

문학적 향취를 깊이 느끼고 싶다면 단연 ‘오정희 소설’을 읽어야 한다. 섬세한 문장 갈피마다 아름다움과 삶이 고스란히 담긴 단편소설을 많이 발표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단지 문장만 음미해도 벅찬 감동을 줄 정도로 탁월하다.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25전쟁 후 중국인 거리에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단편소설의 진수 오정희 작품 읽으며 작가꿈 키웠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작가 여럿이 “나는 오정희 선생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오정희 선생의 작품을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는 ‘필사 작업’을 통해 문학을 공부했다”고 고백한 작가도 있다.

마음먹고 소설을 읽고 싶다면, 나중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문학의 향기를 짙게 느끼고 싶다면 오정희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라. 오정희 소설가는 단편소설의 진수를 보인 작가이다. 작품집에 실린 여러 단편소설 가운데 《중국인 거리》가 따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소설의 대표 단편작을 뽑아 한국어·영어로 동시 수록한 ‘바이링궐 에디션 : 한국 현대 소설’ 시리즈 가운데 11번째 책이다.

1979년에 발표된 소설 《중국인 거리》는 6·25전쟁 이후의 암담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나’가 새로 이사 온 중국인 거리에서 겪는 이야기이다.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거칠고 각박한 그곳에서 소녀와 그 가족은 중국인, 미군, 피난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나’는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제분 공장의 밀가루를 훔치고 화차의 석탄을 훔쳐 간식으로 바꾸어 먹는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요즘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풍경이 소설 속에 가득 담겨 있어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일곱째 아이를 가진 엄마의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동생들 돌보느라 늘 지쳐 있다.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나름의 즐거움은 있는 법이다. 매기 언니가 갖고 있는 각종 신기한 물건이 ‘나’와 친구 치옥이의 장난감이다. 매기 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때면 둘은 그 집에 들어가 화장품이며 향수 따위를 구경하고 유리병, 페티코트, 속눈썹 따위를 만지작거린다. 푸른 병에 들어있는 박하액을 한 모금씩 마시고, 비로드 상자 속의 액세서리들을 몸에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소녀들은 호기심을 채워간다.

이근미 소설가
이근미 소설가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환경과 익숙해질 즈음 흑인과 결혼해 미국에 갈 거라던 매기 언니가 죽고, 시골로 간 할머니도 죽는다. 일곱째 아기를 낳은 엄마가 여덟째 아기까지 낳았을 때 ‘나’는 초경을 겪고 사춘기의 나이를 맞게 된다. 《중국인 거리》는 전쟁 후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어두운 모습을 아이의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과 이별을 겪는 소녀가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경험하는 이중적인 구도이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세상의 빛과 어둠을 겪으면서 소녀로 자라는 성장소설이다. 단순한 문장에 가벼운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에 문장 한 줄 한 줄 음미하면서 지나간 시대의 풍경을 아스라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중국인 거리》이다.

“자칫하면 베끼게 될까봐 걱정될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베껴 썼다가 황급히 지웠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이 이어지는 오정희 소설을 읽다 보면 문학의 향기에 듬뿍 취하게 될 것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친구라면, 한국문학에 깊이 심취하고 싶다면 오정희의 단편소설을 많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근미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