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와 과학 기술의 발전
도구라는 개념은 인류의 탄생과 같이 등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도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 이런 도구의 발전이 지금의 과학 기술 발달의 원천이다. 과연 도구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석기시대에는 생계를 위해 쓰이는 도구들뿐이었다. 동물이나 물고기를 사냥할 때 쓰는 활, 창 등이 있다. 또한, 부족끼리 전쟁을 할 때 쓰는 칼이나 검, 도끼도 있다. 식량을 보존할 수 있는 토기나 도자기도 있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챙길 수 있는 정도의 도구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시간이 흐를수록 도구는 더욱 그 존재를 확장하게 된다. 확장된 존재만큼 실용성도 늘어났고 그 의미가 더해졌다. 사람들이 꼭 살아가는 데에만 필요한 도구뿐만 아니라 더 편리해지기 위해 쓰는 도구들이 늘어난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기계’라는 개념 또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최초의 기계는 제분기라는 것인데, 그것의 동력은 수차였다. 그 수차를 이용하여 곡물을 분쇄하는 기계이다. 이렇듯 자연의 에너지를 기계 작동의 원동력으로 사용하며 도구의 큰 발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점차 전기가 기계의 원동력이 되자, 약 19세기에 전기 기관차나 전구 등이 발명되었다. 그리고 교통과 산업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기계들이 우리 삶 주변에 존재하며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또한 의료, 구조 그리고 의식주 등에 많이 쓰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계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과학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도구의 필요성과 쓰임새가 늘어날수록 인류는 몇 발자국씩 진보한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지금은 과학 기술의 혁신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이 흐름은 꾸준히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어떤 과학 기술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그만큼 과학 기술은 상상을 초월한 기계나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계속적으로 연구가 가능하고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일종의 막강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가 과학 기술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강대국들과 순위를 앞다투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이뤄낸 것들도 많다. 생명과학, 지구과학, 스마트폰, 로봇 등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성과도 많이 보여 왔다. 이런 기술들을 이용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인류의 미래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기 좋은 땅을 일궈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조상들이 땀으로 이뤄낸 결실을 따서 발전해내듯, 후손들도 우리가 해낸 노력들을 이용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신상우 생글기자(화정고 1년) swshins@naver.com
한국은 왜 노벨상을 못 받나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의 목표이자 정점은 바로 노벨상 수상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나라에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번쯤 노벨상을 꿈꾼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금까지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평화상 부문에서 단 한명만 나왔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이며, 가장 비슷한 나라이다. 그렇다고 일본에만 유능한 학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우선 노벨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긴 시간동안 오랜 과정을 걸쳐 결과를 완성해내는 노벨상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정보기술(IT)계열의 실험에 더 관심을 둔다. 독창적인 기술이나 인류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노벨상은 당장의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장기간의 연구에 마음먹은 사람들도 막대한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기업들의 지원금 마련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제품을 가져오면 신제품 개발금을 주겠다는 희한한 소리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일본은 노벨상 개발금에만 많은 돈을 쓴다. 이것이 바로 일본에서 평범한 회사원이나 다른 사람들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자기 자리의 일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다른 문제점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로 결정에 있다. 우리나라에선 두뇌가 좋은 사람들은 주로 의사로 빠진다. 기초과학과 전기전자 등 이공계로 진로를 선택하는 우수 두뇌는 일본만큼 많지 않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두뇌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반면 일본에선 유능한 사람들이 모두 의학계로 빠지지 않고, 과학계로 오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일본처럼 여러 가지 도움이 국가와 기업 등에서 많이 나오면 좋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조금도 사회 각층에서 지원된다. 안팎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어내기 좋은 환경이다.
이 외에도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정해진 틀에서만 살아야 하는 어린 시절과 마땅한 실험 장비조차 없는 환경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다. 노벨상은 평생을 걸려야 하는 얻을 수 있는 영광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멀었다. 한국사람만큼 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선진국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노희승 생글기자(평촌중 1년) phillip1219@naver.com
디턴의 ‘위대한 탈출’…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
2015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인 앵거스 디턴(70)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소비와 빈곤, 그리고 복지 분석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디턴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과 경제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켰고 삶을 개선했으며 그 결과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평등해졌다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을 분석 결과로 내세웠다. 이러한 이론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그의 유명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2013)’을 찾아 읽었다. 책을 보면 여러 나라의 성장을 이끈 것은 불평등이며 결국 세상은 역설적으로 평등해졌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들이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특히 한 나라의 소득과 기대수명의 관계에 대해 소득의 절대액이 아닌 증가율로 분석한 것이 인상적이라 할 수 있는데, 책에 나와 있는 그래프를 보면 일정 소득을 넘어가면 행복감에는 딱히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증가율을 기준으로 분석하면 소득과 기대수명이 정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제성장과 기대수명의 증가는 비례하며 오히려 평균 기대수명의 비약적 증가는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때 이루어졌고, 따라서 경제성장의 결과로 세계가 비교적 고루 평등해졌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디턴 교수의 관점은 파리경제대학교의 교수인 토마 피케티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이라는 저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피케티 교수는, 극소수의 상류층이 중산층의 수백만 배에 이르는 부를 얻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으로 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결국 피케티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문제점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반해 디턴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가난한 나라들이 더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는 유인이 될 수 있는,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피케티 교수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빈부 격차 등의 주제가 자주 논쟁거리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경제적 불평등이 여전히 세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불평등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앵거스 디턴 교수는 이 점을 강조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활용해 더 부유해지고, 사회가 저소득층에게 불평등에서 탈출할 힘을 기를 여력을 주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다.
디턴 교수가 새로운 시각으로 불평등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들도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을 가지기보다는, 한번 색다른 관점에서 다른 원인들도 찾아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깊이 생각해본다면 세계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정하영 생글기자(민족사관고 1년) gkdudwjd00@naver.com
도구라는 개념은 인류의 탄생과 같이 등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도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 이런 도구의 발전이 지금의 과학 기술 발달의 원천이다. 과연 도구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석기시대에는 생계를 위해 쓰이는 도구들뿐이었다. 동물이나 물고기를 사냥할 때 쓰는 활, 창 등이 있다. 또한, 부족끼리 전쟁을 할 때 쓰는 칼이나 검, 도끼도 있다. 식량을 보존할 수 있는 토기나 도자기도 있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챙길 수 있는 정도의 도구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시간이 흐를수록 도구는 더욱 그 존재를 확장하게 된다. 확장된 존재만큼 실용성도 늘어났고 그 의미가 더해졌다. 사람들이 꼭 살아가는 데에만 필요한 도구뿐만 아니라 더 편리해지기 위해 쓰는 도구들이 늘어난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기계’라는 개념 또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최초의 기계는 제분기라는 것인데, 그것의 동력은 수차였다. 그 수차를 이용하여 곡물을 분쇄하는 기계이다. 이렇듯 자연의 에너지를 기계 작동의 원동력으로 사용하며 도구의 큰 발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점차 전기가 기계의 원동력이 되자, 약 19세기에 전기 기관차나 전구 등이 발명되었다. 그리고 교통과 산업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기계들이 우리 삶 주변에 존재하며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또한 의료, 구조 그리고 의식주 등에 많이 쓰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계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과학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도구의 필요성과 쓰임새가 늘어날수록 인류는 몇 발자국씩 진보한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지금은 과학 기술의 혁신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이 흐름은 꾸준히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어떤 과학 기술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그만큼 과학 기술은 상상을 초월한 기계나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계속적으로 연구가 가능하고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일종의 막강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가 과학 기술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강대국들과 순위를 앞다투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이뤄낸 것들도 많다. 생명과학, 지구과학, 스마트폰, 로봇 등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성과도 많이 보여 왔다. 이런 기술들을 이용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인류의 미래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기 좋은 땅을 일궈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조상들이 땀으로 이뤄낸 결실을 따서 발전해내듯, 후손들도 우리가 해낸 노력들을 이용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신상우 생글기자(화정고 1년) swshins@naver.com
한국은 왜 노벨상을 못 받나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의 목표이자 정점은 바로 노벨상 수상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나라에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번쯤 노벨상을 꿈꾼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금까지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평화상 부문에서 단 한명만 나왔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이며, 가장 비슷한 나라이다. 그렇다고 일본에만 유능한 학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우선 노벨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긴 시간동안 오랜 과정을 걸쳐 결과를 완성해내는 노벨상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정보기술(IT)계열의 실험에 더 관심을 둔다. 독창적인 기술이나 인류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노벨상은 당장의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장기간의 연구에 마음먹은 사람들도 막대한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기업들의 지원금 마련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제품을 가져오면 신제품 개발금을 주겠다는 희한한 소리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일본은 노벨상 개발금에만 많은 돈을 쓴다. 이것이 바로 일본에서 평범한 회사원이나 다른 사람들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자기 자리의 일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다른 문제점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로 결정에 있다. 우리나라에선 두뇌가 좋은 사람들은 주로 의사로 빠진다. 기초과학과 전기전자 등 이공계로 진로를 선택하는 우수 두뇌는 일본만큼 많지 않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두뇌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반면 일본에선 유능한 사람들이 모두 의학계로 빠지지 않고, 과학계로 오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일본처럼 여러 가지 도움이 국가와 기업 등에서 많이 나오면 좋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조금도 사회 각층에서 지원된다. 안팎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어내기 좋은 환경이다.
이 외에도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정해진 틀에서만 살아야 하는 어린 시절과 마땅한 실험 장비조차 없는 환경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다. 노벨상은 평생을 걸려야 하는 얻을 수 있는 영광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멀었다. 한국사람만큼 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선진국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노희승 생글기자(평촌중 1년) phillip1219@naver.com
디턴의 ‘위대한 탈출’…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
2015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인 앵거스 디턴(70)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소비와 빈곤, 그리고 복지 분석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디턴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과 경제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불평등은 경제를 성장시켰고 삶을 개선했으며 그 결과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평등해졌다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을 분석 결과로 내세웠다. 이러한 이론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그의 유명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2013)’을 찾아 읽었다. 책을 보면 여러 나라의 성장을 이끈 것은 불평등이며 결국 세상은 역설적으로 평등해졌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들이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특히 한 나라의 소득과 기대수명의 관계에 대해 소득의 절대액이 아닌 증가율로 분석한 것이 인상적이라 할 수 있는데, 책에 나와 있는 그래프를 보면 일정 소득을 넘어가면 행복감에는 딱히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증가율을 기준으로 분석하면 소득과 기대수명이 정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제성장과 기대수명의 증가는 비례하며 오히려 평균 기대수명의 비약적 증가는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때 이루어졌고, 따라서 경제성장의 결과로 세계가 비교적 고루 평등해졌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디턴 교수의 관점은 파리경제대학교의 교수인 토마 피케티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이라는 저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피케티 교수는, 극소수의 상류층이 중산층의 수백만 배에 이르는 부를 얻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으로 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결국 피케티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문제점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반해 디턴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가난한 나라들이 더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는 유인이 될 수 있는,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피케티 교수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빈부 격차 등의 주제가 자주 논쟁거리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경제적 불평등이 여전히 세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불평등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앵거스 디턴 교수는 이 점을 강조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활용해 더 부유해지고, 사회가 저소득층에게 불평등에서 탈출할 힘을 기를 여력을 주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다.
디턴 교수가 새로운 시각으로 불평등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들도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을 가지기보다는, 한번 색다른 관점에서 다른 원인들도 찾아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깊이 생각해본다면 세계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정하영 생글기자(민족사관고 1년) gkdudwjd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