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뒤엎고 당선된 친기업 성향의 마크리 후보
"시장주의·개방 확대…수출 경쟁력 회복시키겠다"
아르헨티나에서 12년 만에 우파 대통령이 탄생했다.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성향 야당인 ‘공화주의 제안당(PRO)’ 소속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56)가 51.4%를 득표해 당선됐다. 좌파 성향의 집권 여당 ‘승리를 위한 전선(FPV)’ 소속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인 다니엘 시올리 후보(58)는 48.6%를 얻었다.

친(親)기업 성향의 마크리 후보가 당선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에 대한 기대감도 살아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표 주가지수인 머발지수는 마크리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던 지난달 25일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이후 약 25% 상승했다.

수렁에 빠진 경제에 ‘변화’ 요구 커져

올초 대선 경쟁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시올리 후보의 수월한 승리가 예측됐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올리 후보는 법에 따라 3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후계자다.

2003~2007년 대통령을 지낸 남편에 이어 2007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철저한 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을 폈다. 매월 일정 금액을 빈민 가족에게 지급했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에게 최신 모델의 넷북을 무상 제공했다.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봉급 수준도 두 배로 늘렸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의 40%는 정부로부터 연금이나 봉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경제였다. 경제성장률은 0%대로 떨어졌고, 올해 정부의 재정적자 폭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를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30%에 이어 올해도 25%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급락해야 수출경쟁력이 살아나지만 현 정권은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질 것을 염려해 외환시장에 개입, 인위적으로 페소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고 있다. 2001년 채무불이행 선언 이후 채권자들과의 합의를 거부하면서 해외 투자자도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변화를 갈망하면서 개혁 성향의 마크리 후보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마크리 후보는 34.3%를 얻어 36.9%를 얻은 시올리 후보를 바짝 따라잡았다.

페소화 가치 절하·보조금 삭감 약속

마크리 당선자는 자유시장주의와 개방경제 체제 확대를 약속했다. 페소화 가치를 시장에 맡겨 수출 경쟁력을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각종 보조금도 삭감하기로 했다. 현 정부가 전기, 가스, 교통요금 등 기초 서비스에 대해 광범위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을 손보겠다는 뜻이다. 그는 통계청과 중앙은행, 언론 등에 대한 정부 입김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마크리 당선자는 지난 주말 TV토론회에서 “현 정권이 실제보다 축소된 빈곤율(5%)을 내세우며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며 “10년간 2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자도 대선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CNN머니는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했던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12년 만에 채무관계를 청산할 것이란 기대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 성향의 야당 ‘공산주의 제안당(PRO)‘ 소속 마우리시오 마크리(56)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 인해 194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이 주창한 이후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를 지배해온 국가사회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페론주의’도 일단 자리를 내주게 됐다.

페론주의란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이 내세운 경제, 사회정책을 일컫는다. 외국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집권 1기(1946~1955년)에 페론은 국가 부채를 탕감하고, 산업을 국유화시켜 외국 자본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과 자주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또한 노동자 복지정책을 대폭 확대해 1947년 노동자의 시간당 실질임금이 25% 인상됐고, 1948년에는 다시 24% 상승됐다. 집권 초반에는 경제 성장을 이뤘으나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한때 풍부한 자원 보유로 세계 5대 경제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하락세를 겪게 된 배경은 이러한 페론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임근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