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27) 근거 없는 디플레이션 우려
국제 원자재값 떨어져도 물가 하락에 영향 미쳐…인플레·현금보유 동시 진행으로 부동산 등 개별 재화는 상승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9개월째 0%대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한국은행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에 관한 한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 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물가가 하락하자 일본 내외의 경제분석가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들은 대개 인플레이션도 나쁜 것으로 여긴다.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의문은 지금의 국내 경제 상황을 과연 디플레이션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다.

전용덕 교수
전용덕 교수
먼저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의 정의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통화 공급량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통화 공급량이 증가하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오늘날 케인스 추종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일반인은 ‘전반적인 물가 하락’을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하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물가 하락(상승)은 통화 공급량 감소(증대) 때문일 수 있고 다른 원인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물가 하락(상승)은 결과이지 그 자체가 디플레이션(인플레이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가 하락(상승)을 디플레이션(인플레이션)으로 정의하는 것은 디플레이션(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모호하게 해 그 해결을 어렵게 한다.

재화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가격에 대한 기대, 개별 재화의 수요·공급 등과 같은 것은 비화폐적 요인이고 바로 그 이유로 여기에서는 제외한다. 디플레이션은 화폐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폐와 모든 재화의 가격은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염두에 둬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총량적 개념, 즉 방법론적으로 모든 재화를 하나의 재화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모든 재화 가격을 결정하는 궁극적 요인은 네 가지다. 화폐 재고, 재화에 대한 예비적 수요, 재화 재고, 화폐에 대한 예비적 수요 등이다. 앞의 두 요인은 각각이 증가하면 모든 재화 가격을 상승하게 한다. 뒤의 두 요인은 각각이 증가하면 모든 재화 가격을 하락하게 한다. 예를 들어 화폐에 대한 예비 수요, 즉 현금 수요가 증가하면 그만큼 모든 재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모든 재화 가격은 하락한다. 종합하면 최근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소위 디플레이션)은 앞에서 열거한 네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 결과다.

이 네 가지 요인의 최근 변화를 살펴보자. 첫째, 일정 시점의 화폐 재고는 일정하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정책과 민간 은행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재고가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지난 60여년을 일별하면 한국은 일시적으로 화폐 재고가 감소한 경우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화폐 재고는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일부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인플레이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도 통화 공급은 증가했다.

둘째, 모든 재화에 대한 예비적 수요는 장기적으로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투기가 재화에 대한 예비적 수요의 주요 이유이기 때문에 재화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서는 부동산, 농수산물을 포함한 원자재 등과 같은 일부 재화는 투기가 상당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기간 물가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셋째, 자본투자가 축적됨에 따라 모든 재화의 재고는 장기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침체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 1분기 0.8%, 2분기 0.3%를 기록해 단기에 모든 재화의 재고는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다.
국제 원자재값 떨어져도 물가 하락에 영향 미쳐…인플레·현금보유 동시 진행으로 부동산 등 개별 재화는 상승
넷째, 화폐에 대한 예비 수요, 즉 현금 수요는 예비적 목적으로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추세를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전쟁, 경기침체 등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현금 수요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케인지언이 현금 보유를 이렇게 늘리는 것을 ‘화폐 퇴장’으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히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는 기업가뿐 아니라 소비자까지 위기 이전보다 현금(화폐)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늘려왔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7841개 기업(2010년 기준, 자산 300억원 이상)의 현금자산(현금·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단기투자상품 등의 합계)은 2001년 약 184조원에서 2014년 약 500조원으로 늘었다. 국민총소득(GNI)은 2001년 약 683조4000억원, 2014년 약 1496조5000억원이다. 현금자산을 GNI로 나눈 비율은 2001년 약 27%, 2014년 약 33%다. 국내 기업들이 2001년에 비해 2014년에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현금을 더 많이 보유했음을 보여준다.

(표)는 2001년 이후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여준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네 가지 요인과 기대, 각 재화 수요·공급의 영향이 서로 상쇄돼 나온 결과다. 최근 1년간의 소비자물가 변화는 화폐 재고 증대, 즉 인플레이션과 민간의 현금 보유 증가가 동시에 진행된 결과다. 따라서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은 높지 않지만 개별 재화(예를 들어 일부 지역의 부동산, 전세 등) 차원에서 가격 상승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가 하락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디플레이션 우려는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