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91)
[직업과 경제] 커피의 등급을 결정하는 커피감별사, 큐그레이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돼 이슬람 문화권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커피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중국 청나라를 통해 조선에 들어온 커피는 당시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특히 고종 황제가 커피애호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회랑을 짓고 커피와 다과를 곁들인 연회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당시 커피는 지배계급만의 전유물에 불과했을 뿐, 지금과 같이 전 국민이 애음(love to drink)하는 음료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종로와 명동 등지에 커피를 파는 다방이 존재했지만, 가격이 비싸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부유층 등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커피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부터였다.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함께 들어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장에 유통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도 커피는 여전히 고급 음료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수입 금지 품목에서 풀리기는 했지만 커피 수입이 여전히 제한돼 있어 소량의 원두 수입만이 가능했고, 이로 인해 커피 한 잔 가격은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아직 높았기 때문이다.

[직업과 경제] 커피의 등급을 결정하는 커피감별사, 큐그레이더
그러던 커피가 실질적인 대중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1970년대 인스턴트커피의 국산화와 세계 최초의 믹스커피 개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커피의 시장 가격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졌고, 자판기 보급에 힘입어 커피를 찾는 손길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즈음 경제개발로 국민소득이 증가한 것도 커피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경제학에서는 특정 재화의 수요를 결정하는 변수로 해당 재화의 가격과 소비자의 소득을 꼽는데, 1970년대 이후 불어 닥친 커피시장의 성장도 이러한 변수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수요의 법칙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불변일 때, 재화의 가격이 하락하면 통상적으로 그 재화의 수요량은 증가하기 마련인데, 커피 생산의 국산화와 공장화를 통해 가격이 떨어지면서 커피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인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 소비자의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 역시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와 커피 소비의 증가 시기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1990년대를 지나면서 커피시장에도 일대 변혁의 바람의 불기 시작했다. 인스턴트와 믹스커피가 주름잡던 시장이 원두커피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소비자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고급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커피 소비의 고급화를 통해서도 수요가 어떤 요인에 의해 변화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화의 수요는 가격과 소득 외에도 소비자의 기호와 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커피시장의 경우 소비자의 취향이 믹스커피에서 원두커피로 고급화됐는데, 이로 인해 생두(볶기 전의 커피)와 원두(볶은 후의 커피)의 수입량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생두와 원두 등 조제품을 제외한 커피 수입량은 1990년대 통계 작성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 수입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역시 원두 수입량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었는데, 이를 1년 만에 다시 갈아치우는 셈이다. 또한 원두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시럽 등을 첨가한 음료를 파는 커피 프랜차이즈도 성장 일로를 걷고 있다. 이 역시 소비자의 기호가 변화하면서 원두커피를 마시고자 하는 소비자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이로 인해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믹스커피 소비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놓여 있다.

이제 시장은 커피를 마실 때 가격뿐만 아니라 커피가 지닌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원두의 종류와 원산지까지 꼼꼼히 따지는 세상이 되었다. 개중에는 전문가 못지않게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일반 소비자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양질의 원두를 선별해 잘 로스팅(roasting)하고 이를 활용해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커피를 만드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커피시장에서 큐그레이더(Q-grader)가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큐그레이더란 맛과 향 등을 고려해 생두와 원두의 품질을 평가하고 등급을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마디로 어떤 커피가 좋은 것인지를 감정하는 커피감별사가 큐그레이더인 셈이다. 큐그레이더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과정을 커핑(cupping)이라고 하는데, 우선 커피를 갈기 전 생두를 관찰하면서 커피 품질을 평가한다. 그 후 생두를 볶아 만든 원두를 눈으로 확인하고 이를 갈아 다시 향기를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갈아 만든 커피를 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적당량 부어 향과 맛을 음미하며 최종적으로 커피의 품질을 결정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큐그레이더는 낯선 직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커피시장이 성장을 지속하고 고도화세분화될수록 그 가치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커피(주 12.3회)를 배추김치(11.8회)나 쌀밥(7회)보다 더 자주 먹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커피시장 성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큐그레이더의 앞날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큐그레이더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커피의 품질과 가격에 이들의 결정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자격을 취득하고 큐그레이더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시험은 총 9단계에 걸쳐 치러지는데, 필기시험과 8단계의 실기시험으로 구성된다. 필기시험은 총 100문항으로, 커피와 커피시장에 대한 지식을 묻는 객관식과 오엑스(OX) 문제로 구성된다. 실기는 커피 맛을 구별하는 미각능력, 커피 향을 구분하는 후각능력, 커피 종류를 골라내는 구분능력, 커피의 향기로움을 평가하는 유기산분별능력, 로스팅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 샘플로스팅분별능력, 커피 등급의 평가 방법을 확인하는 생두결점두분별능력, 원두 감별능력을 평가하는 원두분별능력, 원산지별 커피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대륙별커피감정능력 테스트로 나누어 진행된다.

■수요의 변화

수요의 변화는 다른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 수요자의 소득, 수요자의 기호, 수요자의 수, 미래에 대한 기대, 정부정책 등에 따라 변화한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변화하면 수요량은 동일한 수요곡선 상에서 이동하지만 그 외의 다른 요인이 변화하면 수요곡선 자체가 이동해 수요량에 변화를 준다.

■큐그레이더

생두와 원두의 품질을 평가하고 등급을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한 자격은 정해져 있지 않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큐그레이더로 활동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ACC)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해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으며, 3년마다 재시험에 통과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