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25) 정부개입정책 성공신화의 진실
시장친화적 해법 찾게 한 수출주도 성장전략…국가개입 억제해 '한강의 기적' 이루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영국 타임스(The Times)는 이렇게 썼다. ‘아주 위대한 영국인/…/ 천재적인 인간으로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준 정치경제학자다./…/ 그와 견줄 정도의 영향을 준 사람을 고른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애덤 스미스 정도가 될 것이다.’ 어떤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어떤 식의 시험을 치르더라도 그는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또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사상가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케인스가 1936년 저술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은 경제학 이론은 물론이고 실제 경제정책 면에서 ‘세상을 바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케인스 이론의 대강은 이렇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을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해 메움으로써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지출을 늘리면 최초 정부지출의 몇 배로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이른바 ‘승수이론’(본지 8월1일자 A20면 참조)이 그것이다. 이 이론은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장악했고, 실제 거시경제 정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인한 경기부진을 타개한다는 명분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조기집행의 이유도 이 이론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친화적 해법 찾게 한 수출주도 성장전략…국가개입 억제해 '한강의 기적' 이루었다
케인스가 끼친 영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더 크고 광범위한 영향은 시장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경제를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부개입주의 정책’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유망주를 개발하고 지원, 육성해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정부의 역할이 경제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다보니 자원을 배분하는 금융시장의 역할을 무시하고 금융기관을 정부가 장악해 자원 배분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개입주의 정책이 성공한 예로는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험, 특히 한국의 경험을 주로 꼽고 있다. 과연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 비결은 국가개입주의 정책에 있었을까.

잘 알고 있듯이 ‘한강의 기적’은 수출주도형 경제정책 덕분이었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에서는 정부 통제의 체제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점이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정부가 시장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제어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국내의 재화와 요소시장을 효율을 중시하는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자원 배분이 가격메커니즘에 의해 이뤄지도록 한다. 또 국제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최소한 유지시키기 위해 수출과 기업환경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되며, 잘못된 경제정책을 재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즉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한국 기업을 강력한 국제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反)시장적 정책들이 시도되지 못하도록 하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한 반면 정부의 개입정책으로 인한 비효율을 최소화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정부가 자의적이고 반시장적인 정책을 펴는 것을 상당 부분 억제했다.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재화를 발굴하고, 또 해외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가 아닌 국제적인 수요, 기술 발전, 비교우위나 비교열위가 있는 재화나 서비스 등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으며, 이와 관련된 데이터의 변화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다시 말해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경제정책을 입안하거나 정책을 시행할 때 시장적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가능한 한 시장친화적인 해법을 찾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국가 개입보다는 시장이 우위에 서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수출주도 전략 및 시장우위 정책은 1970년대 초·중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시행하면서 다소 무너진다. 정부가 중점 육성 산업분야를 선정하고 대대적인 육성정책에 들어가면서 내자(內資)와 외자(外資)의 규모와 조건, 투자 종류와 규모, 생산된 제품의 가격 등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까지도 정부의 결정에 종속시킬 정도로 정부 개입의 강도가 강화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과잉투자와 왜곡된 자원배분을 초래했고, 결국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기업이 정부의 도움 없이는 존속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물가는 해마다 두 자리 숫자로 치솟고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 개입보다 시장우위 정책이 복원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이때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물가는 희생한다’는 케인스식의 정책 패러다임을 ‘물가안정이 우선이다’는 방향으로 대전환했고, 성장정책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시켰으며,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보호무역정책을 개방화로 바꿨다. 시장우위 정책의 복원으로 19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한편 1987년 9차 개정헌법에서 도입된 ‘경제민주화’는 다시금 정부개입 강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 기업 경영의 자율성 축소, 복지 특혜 요구를 비롯한 포퓰리즘 정책의 논리 제공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결과 1980년대까지 10% 수준을 유지하던 투자 증가율은 1990년대가 되면 절반 이하(4.4%)로 떨어지고, 2003년부터 10년간 다시 절반 이하(1.7%)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1970년대 10.3%, 1980년대 8.8%였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에 6.2%로 하락했고, 2003년 이후 10년간은 4.4%로 낮아졌다. 그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2%대로 추락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성장 비결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가 한국 경제의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