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9)
주택, 특히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을 짓기에 앞서 완공 후의 모습이나 구조 등을 알아볼 수 있도록 미리 지어 보여주는 견본주택을 모델하우스라고 한다. 집을 사고자 하는 수요자에게 모델하우스는 자신들이 살게 될 집의 구조가 어떤지를 미리 가늠할 수 있게 하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밀지를 계획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에는 내부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마감재는 무엇이고,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혹은 추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설비와 기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모델하우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수요자에게 모델하우스는 단순한 모형의 의미를 넘어서 자신(들)의 미래 거주 모습을 명확히 형상화할 수 있는 표본으로 작용하고 있다.한편, 집을 판매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모델하우스는 주택의 판매 촉진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공동주택은 완공되기 전, 시공 과정에서 주택을 판매하는 선(先)분양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다. 이 경우 수요자는 아직 실재하지도 않는 주택을 그것도 거금을 들여 사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분양이 저조해지면 건축업자의 수익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때 모델하우스가 수요자들의 선택을 유도하여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면 건축업자의 이익을 향상시키는 증폭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주택을 판매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문제가 비단 건축업자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업자로부터 구입한 집에 거주하던 사람들도 때로는 이주의 필요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주택 판매와 수익 창출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통근이 불가능한 곳에 위치한 회사에 취직한 경우에 그렇고, 결혼이나 자녀양육 문제가 이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벌이가 좋아 더 나은 환경의 주택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 반대로 형편이 나빠져 평수를 줄여 이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주택을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금액으로 파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재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그 중에서도 거주 중인 주택에 묶여 있는 대한민국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중요성은 더욱 증대된다.
한편, 주택을 판매할 때 조금이라도 비싼 가격에 팔아 차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구입 자금의 상당액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충당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하면 차익을 남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해진다. 그동안 대출에 대한 급부로 은행에 지불한 이자비용과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차익을 남긴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미미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동주택은 그 구조나 시설 등이 대동소이하여 다른 집들과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경기가 불황에 빠져 주택을 사려는 수요보다 팔려고 하는 공급이 많아지면 차익을 남기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최근에는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이 평균 70%를 상회하고 있고 심지어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한 지역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주택에 대한 인식이 소유에서 거주로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이러한 주택보유에 대한 인식 변화도 주택 판매와 차익 발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주의 필요성이 발생하면 여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주택을 판매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과제로 남는다. 이때 누군가가 나서 집을 판매해주고 많은 차익까지 남겨준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라 할지라도 매매를 알선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할뿐 직접적으로 판매에 영향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매매가격도 시장에서 정해진 시세를 준용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주택 판매자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적기의 판매와 차익 실현을 공인중개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집주인이 바라는 높은 가격에 주택을 좀 더 용이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홈스테이징(home staging)은 주택을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의 집을 새롭게 꾸미고 장식하여 구매희망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또한 이러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매매주택연출가(home stager)라고 한다. 쉽게 말해 매매주택연출가는 가구나 화분을 재배치하거나 벽지나 커튼의 색을 바꾸어 집을 세련되고 편안하게 보이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때로는 낡고 허름한 공간을 보수하여 집을 깨끗하게 보이게 끔도 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주택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즉, 매매주택연출가는 인테리어업자이자 디자이너이고 컨설턴트인 동시에 시공업자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직업인 매매주택연출가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부터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택경기 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지 못해 안달이었다. 매물이 늘다보니 내놓은 지 1년이 넘어도 구경 오는 사람조차 없는 집들이 허다했고, 시세보다 싼 헐값에 나온 집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매주택연출가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단장한 집들이 구매자들의 주목을 받고 실제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몇몇 조사 기관에 따르면 주택연출 서비스를 받은 주택이 그렇지 않은 주택에 비해 약 70% 이상 빠르게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주택연출에 드는 비용은 평균 수백에서 수천 달러에 불과한데 이후 주택을 팔아 얻은 차익은 이보다 적게는 5배, 많게는 60배에 달했다는 점이다. 즉, 주택연출은 집의 판매 기간을 단축시켜줄 뿐만 아니라 투자비용 이상의 이익을 거두게 해주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였던 셈이다.
아쉽게도 국내의 매매주택연출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향후 전망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2014년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매매주택연출가를 민간육성 부문에 포함시켜 훈련과정을 개설지원하고 시장 수요 창출을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매주택연출이 주택시장의 새로운 서비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이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과 팔 집에 돈을 들여 꾸미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국민 정서상의 문제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로 인해 전세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월세가 넘쳐나는 시장 분위기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연출이 머지않아 주목받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부가가치
생산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가치를 말한다. 기업이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입한 원재료나 중간재를 활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었다면, 해당 상품의 가격에서 원재료나 중간재의 구입비용을 뺀 것이 부가가치가 된다.
■매매주택연출가
주택을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의 집을 새롭게 꾸미고 장식하여 주택의 매매를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시세보다 높게 판매할 수 있도록 컨설팅 및 연출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