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과 함께 하는 생활서 배우는 경제상식 (25)
[주니어 테샛- 중학생을 위한 페이지] 잃어버린 20년
일본은 1991년부터 20여 년 동안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잘나가던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된 것은 자만심 때문입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특유의 근면성과 협동심으로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군사기지 역할을 한 덕도 봤습니다. 1946년 도쿄 올림픽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본은 선진국에 진입했고 일본 상품도 세계 최고로 각광받았습니다.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은 지금의 아이폰만큼이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하지만 너무 잘나가다 보니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방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황 속에 엔화의 값어치가 높아지자 몸값 비싸진 엔화를 들고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센터, 할리우드 영화사를 사들이는 등 졸부처럼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것입니다.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 소비도 늘어나게 됩니다. 늘어난 소비만큼 물건을 빨리 생산하면 상관이 없지만 대개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집값은 특히 더 그런 편에 속합니다.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뛸 거란 기대로 부동산과 주식을 마구 사들였습니다. 급기야 도쿄의 비좁은 주택 가격은 미국 주택 가격에 버금갈 정도가 됐고 일본의 주가는 4배나 올랐습니다.

풍선이 부풀면 언젠가는 터지듯이 나라경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식과 부동산이 너무 비싸지자 사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주가 폭락이 그 시작을 알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닛케이225지수가 1989년 말 39,000대에서 2년 뒤인 1991년에는 10,000대로 추락했습니다. 뒤이어 도쿄 집값이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10분의 1로 폭락했습니다.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죠. 1억엔짜리 집을 자기 돈 5000만엔과 은행 대출 5000만엔으로 샀는데, 집값이 10분의 1 토막이 났다면 집을 팔고도 빚만 4000만엔이 남은 것입니다.

국민들은 빚 갚느라 허덕이고, 기업들은 간신히 버티고,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럼 일본 정부가 대책을 세워 위기를 막아야 할 텐데, 총리가 자주 바뀌다 보니 시간만 허비하고 제대로 대응을 못 했습니다. 경기가 나쁘면 돈을 풀어 경제활동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경제가 여전히 과열된 것으로 잘못 판단해 거꾸로 돈을 거뒀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경기가 위축됐을 텐데 경제의 침체속도가 더 빨라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1995년 고베 대지진이 터지자 복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비세(부가가치세)를 인상한 것이 독약이 되었죠.

2000년대에 들어서자 그나마 버티던 기업들마저 소비 부진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부터는 총리가 해마다 바뀌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제는 파탄났습니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이 몰고 온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무기력증이 팽배하고, 젊은이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돼가고 있죠. 게다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여러가지로 힘겨운 상황입니다.

엔고(円高), 엔저(円低)

[주니어 테샛- 중학생을 위한 페이지] 잃어버린 20년
엔화의 가치가 올라간 것을 엔고라고 합니다. 엔저는 엔고의 정반대입니다. 엔화의 값어치가 싸지는 것을 의미하죠. 즉 엔화 환율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1달러에 100엔이던 엔화 환율이 200엔이 됐다면, 종전보다 100엔만큼 엔화를 더 줘야 1달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가치가 낮은 돈이니 돈을 더 내라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원화 가치가 종전보다 높아지면 원고, 낮아지면 원저가 됩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엔저일 때는 일본의 수출이 늘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대표 차종인 캠리가 대당 100만엔이고, 엔화 환율이 1달러에 100엔이라고 해봅시다. 캠리를 일본에 수출하면 가격은 달러로 대당 1만달러(100만엔÷환율 100엔)가 됩니다. 그런데 엔저로 엔화 환율이 1달러에 200엔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100만엔짜리 캠리의 수출 가격은 5000달러(100만엔÷환율 200엔)로 낮아집니다. 따라서 도요타는 엔저가 될수록 미국 등 해외시장에 자동차를 더 싸게 팔 수 있습니다. 가격이 싸지면 수출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 아베 총리는 과감하게 엔저 정책을 펴서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엔저로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액도 늘어나 해외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해외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은 일자리를 늘릴 테니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활발해질 거란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