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7) '공짜 점심' 노리는 정치적 사업가

정책통해 인기·경력 관리 하거나 보조금·규제 포획해 이익 챙겨
미국 '녹색사업 중개상'이 대표적…기술 개발보다 로비 활동에 혈안
막대한 지원에도 기업 파산 잇달아
정보·영향력 앞세워 사적 이익추구…국부 파괴하는 '정치적 사업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합니다.” 지난해 7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다.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금기시됐던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한여름 겨울옷’이라며 풀어버리고, ‘41조원+α’의 확장적 재정정책 카드를 꺼내든 최 부총리의 이 말은 국가경제를 위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 기업가 정신이란 말만큼 유행하는 말도 없다. ‘창조경제’의 기반이 기업가 정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업가 정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위험 부담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이런 생각은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창조적 파괴를 통한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추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은 시장이나 혁신 기업인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선택학의 분석 무대인 ‘정치시장’에는 ‘정치적 사업가 정신(political entrepreneurship)’이라는 게 있다. 다만 그 의미는 부정적이다.

정보·영향력 앞세워 사적 이익추구…국부 파괴하는 '정치적 사업가'
정치학에서는 정치시장의 모든 참가자들은 이기적이며 전략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지만, 정치행위자들을 사업가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은 경쟁적인 집단 간의 중개상으로 인식하지만, 그들이 사적인 사업가들처럼 정치적 이권을 팔 수 있는 재산권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랜달 홀콤은 “정치적 사업가 정신은 어떤 사람이 정치적 이익의 기회를 좇아서 하는 행동”으로 정의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학파 거장인 이즈리얼 커즈너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이윤 획득 기회를 포착하려고 애쓰다 발견 즉시 낚아채는 행위”로 정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치적 사업가들은 이렇게 지대(地代·rent)를 발견·포착하고 챙겨가는 사람들이다. 정치시장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업을 발견하는 사람,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보호조치·규제·계약 등을 포획해 이익을 챙기려는 사업가들, 대중영합적 정책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경력과 인기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망라한다.

이들 정치적 사업가는 비용과 편익이 별개로 발생하는 환경을 좋아한다. 비용 부담자들과 수혜자들을 분리하는 것이 정치적 사업가들의 일상적인 활동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정치적 사업가들은 자신이나 고객의 점심값을 다른 사람이 부담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협하는 법률이나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소위 ‘지대채취(rent extraction)’에도 관여한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보다 정책 효과를 상징적으로 선전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다.

정부 보조금이 이들의 대표적 먹잇감이다. 감사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1월까지 5년간 부정한 방법으로 빼돌려진 정부보조금은 1300억원에 달한다. 기업들에 접근해 정부보조금을 대신 받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역할을 한 현직 공무원도 부지기수다. 서류조작, 중복수급도 낯설지 않다. 이들에게 정부보조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인 ‘눈먼 돈’이었을 뿐이다.

해외에서는 ‘녹색(green)사업’ 중개상들이 정치적 사업가들로 꼽힌다. 녹색사업 중개상들은 과대포장한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자산으로 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부 녹색사업 관계기업에 지나치게 많은 혈세를 쏟아붓는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을 대표하는 태양 전지판 기업이었던 솔린드라는 과거 연방정부로부터 5억3500만달러(약 5350억원)를 지원받았으나 곧 파산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회사인 에너델은 2009년 경기부양책의 녹색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총 20억달러(약 2조원)를 지원받았다. 광범위한 정치적 연줄을 이용한 로비 활동 덕이었다.

그러나 경영 부실로 대규모 구제금융까지 받았는데도 2011년 파산 신청함으로써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녹색사업의 혁신을 망친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정치적 사업가들에게 자원을 잘못 배분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업가들은 기술개발보다 정부 보조금을 받거나 경쟁자를 배제시키는 법과 규제를 통과시키는 데만 혈안인데도 말이다.

한국의 창조경제 관련 사업들도 정치적 사업가들의 사업마당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치적 사업가들은 창조경제 육성사업을 새로운 이윤 획득을 위한 기회로 생각해 각종 지원·보조금을 낚아채려 할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 모두가 책임 있게 사업을 수행하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개 정치적 사업가들은 이윤기회 포착의 선수들이고 ‘먹튀’에 명수들이다. 과거 정부가 각종 대형 국책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사업가와 그들의 실패를 자주 봐오지 않았는가.

경제인들과 달리 정치적 사업가들은 큰 정부, 재정적자, 세금 낭비의 주범이다. 사후약방문식의 감사도 중요하지만 사전적으로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보공개법, 정책실명제 등 약탈적인 정치적 사업가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합리적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계몽하는 ‘시민 기업가 정신’의 함양도 절실하다.

이성규 <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