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1)
[직업과 경제] 법률가가 경제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재판을 진행하고 최종 판결을 내리는 판사, 국가를 대표해 사건을 조사하고 재판을 청구하는 검사, 법정에서 사건 당사자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변호사.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법률가라고 한다. 법률을 연구하고 이해하여 이를 운용하는 사람을 법률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법률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경과 선망의 직업이다. 이는 전문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법의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또한 올바른 법질서 확립이 국가와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칫 잘못된 판결을 내리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억울한 피해자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법률가들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에는 세심한 판단력이 요구되며, 그것이 미칠 파급력에 대해서도 면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이 다루어야 할 영역과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요즈음은 더 그러하다.

법이 경제학을 만났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백화점 사이에서 무료 셔틀버스 운행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 백화점은 인근 지역을 셔틀버스로 운행하면서 사람들을 백화점으로 실어 날랐다. 물론 이런 서비스는 매출 향상을 위한 백화점 영업활동의 하나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대단했다. 고객들은 셔틀버스 덕분에 편안하고 쾌적한 쇼핑을 즐길 수 있었고, 이 가운데는 백화점 셔틀버스를 개인적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셔틀버스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직업과 경제] 법률가가 경제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백화점으로 주부들이 발길을 돌려 상권이 위축됐다고 주장하는 전통시장과 동네 마트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택시와 버스 등의 운송업체에서는 무분별한 셔틀버스 운행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이에 정부는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통업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정부의 방안이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이처럼 백화점의 무료 셔틀버스 운행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오래지 않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헌재는 유통업체들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고 셔틀버스운행을 금지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정당하다며 전통시장과 운송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헌재의 판결에 경제학의 원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헌재는 셔틀버스와 대중교통, 백화점과 전통시장이 서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체재라고 보았다. 이때 대체재란 버터와 마가린, 돼지고기와 소고기처럼 한 재화의 가격 상승(하락)이 다른 재화의 수요를 상승(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재화를 말한다. 예컨대 버터 가격이 상승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버터와 비슷한 만족(효용)을 가져다주는 마가린을 전보다 더 많이 찾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마가린 수요는 증가하고 버터 수요는 감소한다. 이처럼 한 재화의 가격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같은 만족을 주는 재화의 수요가 상승할 경우, 두 재화는 서로 대체재의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셔틀버스와 관련한 판결에서 헌재는 무료 셔틀버스와 유료 대중버스, 택시 등을 교통수단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료 셔틀버스가 대중교통의 수요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이로 인해 운수업체의 이익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백화점과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백화점과 전통시장을 유통업체라는 하나의 범주에 속한 재화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근거하여 백화점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옳은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즉, 백화점과 전통시장이 취급하는 상품의 질(quality)은 다르지만 그 종류는 비슷하므로 서로 대체재이고, 따라서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되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생겨 전통시장 매출이 전보다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렇다면 헌재의 판결이 실제로 가져온 결과는 어떠했을까. 예상대로 운송업체와 전통시장 매출은 증가하고, 백화점 매출은 감소했을까. 애석하게도 현실은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아니 빗나갔다고 하기보다는 예상과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하였다.

백화점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을 멈추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대신 자가용 차로 백화점을 찾았다. 오히려 자가용 차 고객이 전보다 더 많아지면서 백화점 주변 교통체증만 심해졌다. 일부 고객은 주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등 쇼핑에 대한 기회비용이 커진 점을 고려해 한 번 들렀을 때 더 많은 상품을 백화점에서 구매하기도 하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셔틀버스와 대중교통을 대체재로 간주한 판결은 잘못된 것이었다. 대중교통의 대체재는 백화점 셔틀버스가 아니라 자가용 차였던 셈이다.

백화점과 전통시장의 관계도 똑같은 결과를 나았다. 백화점 매출은 헌재 판결 이후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였고, 전통시장을 찾는 고객의 발길은 여전히 뜸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는 무료 셔틀버스 때문에 백화점 쇼핑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 좀 더 나은 서비스를 받으며 양질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백화점과 전통시장은 서로 대체재가 아닌 정상재와 열등재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이 소득이 증가하면 전통시장보다 상대적으로 품목이 다양하고 양질의 제품을 보유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기를 선호한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금지는 실패한 규제 조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헌재 판결 이후 백화점 매출이 감소하지도, 그렇다고 전통시장 형편이 나아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나 택시 이용 승객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백화점 진출입 차가 늘어 고객의 짜증이 늘었고 백화점 인근에 병목현상이 발생해 사회적 비용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가가 판단을 내릴 때 때로는 법률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법률가의 서재에 법전과 함께 경제학 서적도 꽂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대체재(substitutes)

재화를 소비할 때 소비자에게 비슷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서로 다른 두 재화. 대체재 관계의 재화는 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락)하면 다른 재화의 수요가 증가(감소)한다.

■ 법률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을 연구하고 해석해 이를 운용하고 적용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넓은 의미에서는 법을 학문적 영역에서 다루는 법학자, 법률적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법무사 등도 법률가에 포함된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