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때 이집트 카이로에서 두 차례의 걸쳐 회담이 진행됐다. 1943년 11월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1차 회담에선 연합국 지도자 윈스턴 처칠과 루스벨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대해 논의했다. 연이어 2차 회담에서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중국 총통 장제스가 참석해 대(對)일본 전쟁 수행 협력과 전후(戰後) 영토에 대한 의논을 거쳐 11월27일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태평양상 일본령 제도의 박탈,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모든 영토의 반환,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까지 협력해 맞서 싸울 것 등에 관한 입장을 표명했다. 카이로 선언은 이후 1945년 7월의 포츠담선언에서도 확인해 일본의 항복에 관한 기본 방침이 됐다. 한편 카이로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 핵심 지도자들이 모인 회담으로 군사전략과 전후 질서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회담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장두원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 seigic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