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무브'와 금융시장 빅뱅 신호탄
◆절세 만능통장 ISA와 IFA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2200만명이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는 ‘절세만능통장’이 내년초 나온다. 영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다. 정부는 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ISA 도입 방안 등을 담은 ‘2015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세법개정안은 올 가을 정기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 8월7일 한국경제신문 ☞ 정부가 오랜만에 국민들이 환호할만한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대다수가 가입할 수 있는 절세 만능통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그 주인공이다. 정부가 이 계좌를 도입하려는 건 서민층과 중산층의 생계를 도우려는 것이다.
ISA란?
ISA는 ‘Individual Savings Account’의 약자다. 현재는 예금이나 적금, 주식 투자, 펀드 투자, ELS(주가연계증권) 같은 파생상품 투자를 하려면 각각 통장이 따로 있어야 한다. 예금이나 적금은 주로 은행에서 가입하는 반면 주식이나 펀드, 파생상품 투자는 증권사 창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ISA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 일일이 새로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 불편을 없앴다. 하나의 통장으로 예금이나 적금은 물론 주식·펀드·파생상품 투자가 가능하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바구니 통장(통합계좌)’인 것이다.
게다가 ISA를 이용하면 더 큰 이익이 있다. 이 통장을 통해 투자해 얻은 수익에 대해선 세금이 아예 없거나 아주 적다. 5년간 매년 2000만원까지 넣으면 200만원의 수익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총수익이 200만원을 넘어서면 초과분에 대해서는 9.9%(지방세 포함)의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를 한다. 현재 예·적금 이자에 대한 세금은 15.4%다. 분리과세는 ISA에 가입해 얻은 수익은 다른 소득과 합쳐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소득세는 소득이 늘어나면 세율이 올라가는 누진세여서 합산과세의 경우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얼마만큼 절세 혜택 있나?
ISA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는 연간 2000만원까지 5년간 총 1억원이다. 투자 한도는 이월되지 않는다. 첫해에 1000만원을 넣고 이듬해 3000만원을 불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에서 가입 가능하다. 근로·사업소득이 있으면 나이·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다만 주부나 은퇴 생활자 등과 같이 소득이 없는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또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상인 사람(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가입이 불가능하다.
ISA를 활용하면 세금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예를 들어 5년동안 연평균 2000만원씩 불입해 연평균 4% 수익률을 올려 5년동안 1200만원의 누적수익을 냈다고 하자. 이 경우 현재는 185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ISA를 활용하면 99만원만 내면 돼 86만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5년동안 돈을 인출해선 안된다. 계 내 금융상품 간 갈아타기는 가능하다. 손실이 우려되는 펀드를 해지하고 예금으로 옮겨탔다가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펀드로 자금을 돌릴 수 있다. 5년동안 ISA 계좌를 유지해야 비과세가 적용된다. 계좌를 중도에 해지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계좌 운용이 끝난다. 서민과 중산층 생계에 도움
ISA는 영국과 일본에서도 도입해 시행중이다. 정부가 ISA를 도입하려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계를 돕자는 뜻이 담겨있다. 근로자 1636만명, 자영업자 등 사업소득자 567만명 등 2200만명 가량이 혜택을 볼 수 있다.
ISA는 ‘반퇴 시대’ 에 대비할 수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현재 재형저축 등 재산 형성을 위한 비과세 상품이 있었지만 소득 제한이 있어 저소득층과 청년층만 가입할 수 있다. 중산층이 노후 대비를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고 해도 세제 혜택이 없었다. 하지만 ISA는 사실상 모든 봉급 생활자와 자영업자가 가입할 수 있다. 여기다 3~5년의 의무 가입 기간을 둬 긴 호흡으로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래서 ISA가 장기 투자 문화 정착과 노후 대비를 위한 ‘만능 계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정부는 대신 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자로부터 세금을 좀 더 거두고 종교인에게도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 빅뱅’의 신호탄
ISA는 저금리 시대에 돈의 흐름(머니 무브)을 바꿔 금융시장의 빅뱅을 초래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적금에서 투자상품으로의 이동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말 현재 한국 가계의 평균 금융자산 3306만원 중 62%인 2049만원이 예·적금이다. 미국(14%)의 4배다. 예전에 금리가 높았을때 예·적금에만 묻어둬도 재산을 불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로 저금리 시대가 된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예금이나 적금만으로는 돈을 모으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ISA는 저축(예·적금)에서 투자로 ‘머니 무브’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ISA는 수익률을 높일수록 더 많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익률을 끌어올리자면 주식·펀드·ELS 등 투자상품을 많이 넣어야 한다. 그래서 1%대 예·적금 금리를 참지 못해 이탈하려던 자금을 투자상품쪽으로 대거 이동시킬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ISA 계좌를 유치하기 위한 금융회사 간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ISA와 함께 IFA(독립투자자문업,Independent Financial Adviser)의 도입도 추진중이다. IFA는 특정 금융사에 소속돼 있는 전속 자문업자와 달리 금융회사나 금융상품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인 자문, 상품추천, 체결대행이 가능한 투자자문업자를 뜻한다. 독립적으로 금융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하고 운용을 도와주는 회사인 것이다.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IFA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대행사의 창구를 통해 투자상품에 가입해 왔다. 이 때문에 창구에서 자사 계열사의 상품을 추천하는 등 불완전 판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IFA가 등장하면 은행·증권사에 종속된 상품별 판매·유통 칸막이를 없애 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IFA의 상담을 받으면 소비자는 판매 증권사의 창구를 거치지 않고도 자신에게 맞는 ISA 편입 상품을 직접 고를 수 있다.
이밖에 오프라인 점포없이 온라인만으로 모든 금융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설립,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업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의 허용 등도 금융 빅뱅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여러 개인들로부터 소액을 모집해 목돈을 만든 뒤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의 운영자금 등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개인은 연간 5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한 제조업과 달리 우리나라 금융업은 ‘우물안 개구리’를 면치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큰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ISA와 IFA 도입,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허용 등이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