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31)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상)
1940년대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략하고, 유럽이 파시즘으로 장악되고 러시아가 레닌 사후 전체주의로 치달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통해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는 ‘열린사회’를 역설하였다.포퍼는 이 책에서 우리 속에 나타난 전체주의의 뿌리가 제도, 정책, 개인이 아니라 실은 어떤 도그마식 철학 성찰 방식 때문임을 가르쳐주었다. 닫힌 사회의 주범은 역사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전개된다는 역사법칙주의(empiricism)인데 이는 유토피아주의(utopianism)와 방법론적 신비주의(methodological holism), 역사법칙(historical law)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이 서구 사상의 뿌리인 플라톤에서 연원하여 근대에 와서는 헤겔, 그리고 현대에 와서 마르크스 이론으로 구현되어 전체주의를 형성하고 있음을 자세히 규명한다.
닫힌 사상의 뿌리 ‘플라톤’
포퍼는 페리클레스·데모크리투스·소크라테스·칸트의 사상을 열린사회의 생각 흐름으로, 또 헤라클레이토스·플라톤·헤겔·마르크스의 사상을 닫힌 사회의 생각 흐름으로 본다. 후자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 역사법칙주의(historicism)이다. 처음 역사법칙주의 생각을 보인 것은 그리스 철학자 헤시오도스이며 그 이전까지 세계는 대개 정지된 것으로 여겨졌다. 헤시오도스가 찾아낸 ‘변화’라는 관념을 더 분명히 한 것은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본 헤라클레이토스이다. 헤시오도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공통점은 “이 변화는 곧 퇴화(degeneration)를 의미했고 세상은 더 나쁜 상태로 몰락해 가는 과정을 따른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플라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헤시오도스, 헤라클레이토스에 비해 플라톤은 이 퇴화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거대한 인공적 구조, 곧 이상국가를 설계하였다. 플라톤은 역사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변화란 곧 퇴화인데 이러한 추세에 지배되지 않으며, 변화와 부패의 악이 없는 완전한 불변의 이상국가를 그렸다. 그는 이상국가의 원형을 그리스인의 관념에 남아있던 과거의 ‘황금시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부패하지 않고 완전한 이데아(idea)가 있고 또 이것이 현실에 투영된 부패하고 퇴화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자는 사물의 원형, 존재 이유, 덕, 이상 및 완성이다. 이 관념은 국가에도 적용된다. 현존하는 국가는 곧 이데아로서의 완전한 이상 국가가 현실에 투영된 복제품일 뿐이다.
이상국가에 가장 근접한 국가는 무질서한 민주정치에 쌓인 그의 조국 아테네가 아니라 강력한 노예제 사회였던 스파르타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부합되는 최고의 국가인 이상국가가 귀족정치체제, 과두정치체제, 민주정치체제, 참주정치체제의 순서로 타락해 간다고 보았다. 이러한 타락을 막는 것이 지도자의 임무이며 그 방법은 지배계급에 철저한 공산주의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의 공산주의는 경제적 자원은 물론 처자식까지 공유하는 제도였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계층사회를 전제한다. 거기서 정의(justice)란, 곧 지배자는 지배하고, 노동자는 노동을 하고, 노예는 노예노릇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는 전체주의적 계급통치야말로 ‘정의로운’ 것이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지도자는 시민보다 우월한 사람이므로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정치권력이 주어져야 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그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 지도자가 절대 권력으로 이상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누가 이상국가의 지도자이어야 하는가? 철학자여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철인정치이다. 지도자-피치자의 관계는 개인을 넘어 종족 간에도 이어지며 선천적으로 우수한 종족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후일 히틀러식 파시즘의 뿌리가 되었다.
또 개인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되, 전체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이타주의를 집단주의와 동일시하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간주함으로써 전체주의 국가관의 사상적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플라톤 식의 통치자를 기대하는 것은 메시아 콤플렉스에 불과하다. 이는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를 부르며 그 귀결은 ‘닫힌’ 사회이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왜곡했다.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며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란 ‘단지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아는 것’이었다. 결국 철학은 지식의 내용을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지식을 찾는 겸손한 사고 과정이다.
플라톤의 역사주의 및 전체주의 시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어졌다. 플라톤의 비관적 시각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다소 낙관적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은 목적론이다. 플라톤이 모든 변화를 원형인 완전한 형상, 즉 이데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퇴화(파멸)의 과정으로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변화는 곧 타락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개선이요 진보이다. 이 궁극 목적은 바로 사물의 본질인데 이를 그는 형상(Form)이라고 불렀다. 요컨대, 플라톤은 이데아가 사물들과 떨어져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형상, 본질)이 사물에 내재한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이성을 통해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지도자의 전능성을 가정한다. 그러나 포퍼가 보기에 인간에게 그런 지식이란 없으며 오직 시험에 의해 확증된 가설과 이론이 존재할 뿐이고 이것은 언제라도 시험을 통해 수정 및 폐기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는 예언의 철학, 주술적 철학으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중세 스콜라주의의 원천이 되어 논증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초래함으로써 이성(理性)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포퍼는 플라톤은 자유에 대한 반역을 초래했으며,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 대한 반역을 초래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반(反)이성주의적 사고는 독일의 관념론자들인 피히테, 쉘링을 넘어 특히 헤겔로 이어져 합리적 논증을 내팽개친 그릇된 낭만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전체주의의 원천 ‘헤겔’
헤겔과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전체주의에 더 직접적 영향을 준, 열린사회에 대한 최근의 적이다. 포퍼가 보기에 헤겔은 오늘날 역사주의와 전체주의의 원천이고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모든 파시즘은 헤겔에 크게 연원하고 있는다. 이는 파시즘 이론이 대개 헤겔 이론에다 19세기 유물론을 약간 보태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초래한 자유와 평등 이념이 프러시아에 파급되는 것을 막고자 프러시아가 자유와 역사의 최종 발전단계라고 주장하였다. 헤겔은 형이상학을 열렬히 비판한 칸트의 변증법을 형이상학의 연장에 불과한 자신의 변증법으로 왜곡해 버렸다. 그의 두 기둥은 변증법과 동일철학(philosophy of identity)이다. 전자는 정(正)·반(反)·합(合)이라는 진보의 과정이다. 본래 이 변증법은 과학적 사고의 전개과정에서 바람직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어떤 모순 상태란 허용되지 않으며 과학자는 이를 제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은 다른 결론을 유도했다. 모순이 과학 발전에 유용하므로 용납되어야 하며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헤겔의 주장처럼 모순이 그렇게 바람직하다면 그것을 제거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모든 진보도 중단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행범 <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