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5) 원가공개 주장과 폐기된 이론

가치는 소비자가 판단
생산에 들어간 부품·노동량 아닌
어떤 가치 제공했느냐가 가격 결정

혁신·경쟁이 가격 낮춰
아파트·통신비 등 가격 통제 시도
시장에서 상품·서비스 몰아내는 꼴
[세계 경제사] 원가공개 주장은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소비자가 가격결정권 갖고 있다는 사실 간과
“통신비 원가를 공개하라.”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하라.”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휴대폰 단말기 제조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는 통신비 원가 공개를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수시로 발의되고 있다. 법정에서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사회운동단체들이 요구한 통신비 원가공개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아파트 가격이 치솟던 몇 년 전에는 아파트 분양 원가공개 논란으로 이미 큰 홍역을 치렀다.

이렇듯 상품이나 서비스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아파트 건설에 들어간 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얘기가 나오면 통신서비스 원가나 단말기 제조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통신비, 주거비가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도 원가 공개의 이유가 된다.

[세계 경제사] 원가공개 주장은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소비자가 가격결정권 갖고 있다는 사실 간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당연히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는 그것을 만들어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원가가 존재하는데, 이 원가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은 모두 기업의 탐욕과 횡포 때문이며, 기업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가를 공개하도록 해 이 원가에 일정 비율의 이윤을 붙인 ‘공정 가격’ 혹은 ‘적정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원가를 공개해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통제함으로써 기업들이 폭리를 취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한 채를 짓는 데 1억원이 원가라면 여기에 10%의 이윤을 붙여 1억1000만원에 판매되면 적정한데 1억2000만원이나 1억5000만원 등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것이 엉터리 주장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우선 이 주장은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데에 공급자와 소비자 양측이 모두 존재하고 또 이들 모두가 행동하면서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다시 말해 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비자를 마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식물인간’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가격은 공급자들이 받고 싶어 한다고 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그 가격에 동의하고 구매해야만 비로소 가격이 형성된다. 가격이 형성됐다는 말은 공급자와 소비자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과도 같다. 공급자인 기업이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들이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소비자가 합의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급자는 ‘갑’이고 소비자는 ‘을’일 뿐이며, 높은 가격은 기업의 ‘갑질’에 불과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원가 공개 주장의 근저에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재화의 가치 합이 곧 그 물건의 가치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원가를 공개하자는 것이다. 원가를 공개하면 해당 재화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미 폐기된 ‘노동가치설’이나 ‘생산비설’의 변종(變種)이다. 노동이 10시간 투입됐다면 그것이 강남의 아파트든, 지방 소도시 아파트든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동일한 가격에 팔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현실에서는 아파트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파트가 나에게 뭘 가져다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것이 곧 그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하게 한다. 다시 말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는 각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학파 창시자인 칼 멩거는 어떤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재화의 가치 합이 그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제까지 경제학의 발전과정 속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던 근본적인 오류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것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경제학에서는 터무니가 없어 이미 폐기처분된 객관적 가치이론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오늘날의 원가 공개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가 공개를 통해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해서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가격은 기술의 발달과 혁신, 신기술의 출현, 규모의 경제, 기업 간 경쟁 등을 통해 낮아진다. 통신비만 하더라도 지난 100년간 꾸준히 하락해 과거에 비해 거의 ‘무료’가 되다시피 낮아졌다. 국제전화비는 1940년대의 1%에 불과하다. 1931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간 3분 통화를 하는 비용은 293달러(1993년 달러 기준)였는데 2001년에는 1달러, 2005년에는 25센트로 낮아졌다. 광케이블과 인터넷의 발달, 휴대폰의 등장으로 통신비는 더 낮아지고 있다. 1930년의 통신비를 100으로 봤을 때 1950년에는 20으로 낮아지고, 2000년이 되면 거의 0에 근접한다. 1960년대 등장한 컴퓨터 가격 역시 10년 만인 1970년이 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2000년에는 0에 근접하고 있다.

원가 공개 등을 통한 가격 통제는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서 몰아낼 뿐이다. 가격을 통제해 수익률을 억지로 낮춰버리면 공급이 중단·축소되고 제품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원가를 공개하라는 주장은 해당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서 없애버리거나 질을 낮추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가격을 낮추고 싶다면 신기술 개발과 혁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