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0)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전혀 의도하지 않게 다른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혜택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생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다면,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 수행한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이 독감에 걸릴 확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대게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 이유는 자신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행위이거나 자신의 지적 만족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후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외부효과라 지칭한다.외부효과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어떤 경제 행위를 수행할 때 해당 경제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에게 의도치 않게 이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가나 벌칙을 받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외부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외부경제는 쉽게 말해 긍정적 외부효과로, 어떤 경제 행위가 제3자에게 의도치 않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시장에서 정당하게 대가를 받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반면 외부불경제는 부정적 외부효과로, 어떤 경제 행위가 타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주었으나 시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경제학에서 외부효과를 주목하는 이유는 외부효과가 사회 전체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 행위는 비용과 편익을 수반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발되는 모든 비용과 편익이 해당 경제 행위를 수행한 개인에게만 전적으로 귀속될 경우, 각 개인이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수준에서 경제 행위를 수행할 때 사회 전체도 최적의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효과가 유발될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외부효과가 유발되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부여되는 비용과 편익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이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 의식하지 않고 결정한다. 이 때문에 시장 전체의 최적화된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부 경제는 보다 권장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부 불경제는 보다 억제해야 사회 전체적으로 보다 개선된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제활동 과정에서 유발하는 외부효과를 활용한 직업이 있으니 다름 아닌 원예치료사이다. 원예란 원래 정원을 가꾸거나 경작하는 작업을 말한다. 과거에서부터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산림에서 얻을 수 있었다. 연료, 식량, 거주지 구성에 필요한 기초 원자재 등이 모두 나무 내지 식물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무를 심는 경제활동의 주된 목적은 경제적인 이유가 다분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산림활동과 원예활동을 통해서 거두려는 성과들은 대부분 경제적 요인이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산림녹화산업을 비롯한 각종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배경에도 이러한 일련의 경제적 순기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목재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목재자원이라 할 수 있는 산림이 부족한 상황에서 목재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산림자원 확보 차원에서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이에 당시 정부는 무분별한 벌목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땔감, 건축자재 등으로 목재가 필요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벌목을 시도하였다. 초창기 벌목이 무분별하게 자행된 이유는 또 있다. 식량 생산을 위한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자원을 훼손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주택용지나 산업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자원을 훼손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러한 무분별한 벌목은 지속적인 산림자원의 활용 기회를 저해하는 요인이기에 적극적인 산림자원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한때 나무는 우리의 가장 주된 수출 원동력이었던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시행한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통해서 산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정부에서 산림자원으로 주목한 수종은 다름 아닌 밤나무와 호두나무였다. 밤나무와 호두나무를 심을 경우 추가적인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는데, 다름 아닌 식량자원 확보와 농가 소득 증대였다. 실제 당시 심었던 밤나무는 1990년대 들어 결실을 보기 시작하여, 10만에 달하는 밤을 생산하여 일본 등지의 해외로 수출하여 1억달러 상당의 수익을 거둔 바도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산림활동과 원예활동의 주된 목적인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원예활동이 가져다주는 혜택의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원예활동이 주는 순기능으로는 수원 보유, 토사유출 방지, 공기정화, 산림휴양, 자연경관, 생물다양성 보존 등을 꼽고 있다. 이 중 일부 기능은 과거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측면도 많다. 나무 심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외부효과들을 우리는 계속해서 발굴해 낸 것이다.
다시 여기에 추가하여 원예활동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혜택을 찾아낸 직업이 바로 원예치료사이다. 원예치료사는 꽃, 식물, 채소 등 식물을 이용해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활동을 원예치료라 하고 이러한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원예치료사다. 정원 가꾸기, 식물 재배하기, 꽃을 이용한 작품 활동 등을 통해서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치유뿐만 아니라 운동능력을 향상시키는 치료 효과까지 얻고자 한다. 이러한 원예치료라는 분야가 국내에 소개된 지는 불과 3~5년 정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술이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심신을 치료할 수 있는 원예치료가 가진 장점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즉 나무나 꽃 등을 키우는 활동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순기능들에 대해서 하나씩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무나 꽃 등 식물을 심는 행위는 우리가 인지하는 수준을 넘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긍정적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듯하다. 이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원예활동과 산림활동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인식하여 다양한 원예활동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3월21일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을 기념하여 ‘트리 허그(tree hug)’ 행사를 진행했다. 트리 허그는 1970년대 인도에서 벌목 반대 비폭력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1분 이상 나무를 안아 주는 행사다. 산림과학원은 2010년에 숲의 공익적 기능이 연간 11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권고하고 있는 녹지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WHO에서는 1인당 녹지 권고량을 9㎡로 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인구 1000만명이 사는 서울은 남산이나 북한산 같이 멀리 있는 산을 제외하고 생활권 숲만을 기준으로 하면 1인당 5~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마 원예치료사처럼 원예활동 내지 산림활동이 가져다주는 순기능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기회가 계속된다면 세계적인 녹지국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