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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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신화의 나라’에서 ‘구제불능의 나라’로 추락했다. 나라 밖에서 빌려 쓴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지난 5일 유로존 채권국가들의 채무 상환 요구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것이다. 사실상 디폴트(Default), 즉 ‘국가채무 상환 불이행’ 선언이다.

그리스는 돈을 참 많이 꿔 썼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가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77%에 달한다. 2008년 109%를 기록한 이후 2010년 148%, 2013년 175%로 급증했다. 국가도 가정과 마찬가지로 빚으로 생활하다간 망한다는 게 그리스 디폴트의 교훈이다.

그리스가 원래 이런 나라는 아니었다. 1980년까지 50년 동안 그리스는 연평균 5.2%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모범 국가였다. 실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 평균 경제성장률 2위라는 기록도 있다. 1981년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때만 해도 그리스의 부채는 GDP 대비 28%에 불과했고, 실업률도 3%에 지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나라는 역시 다르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리스의 몰락은 1981년 좌파세력이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거기다가 EU에 무리하게 가입하면서 몰락이 가속화됐다.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당(PASOK)’과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세력이 그리스를 망가뜨렸다는 게 정설이다. 좌파정부는 권력을 잡자마자 보편복지와 정부개입 강화, 공공부문 확대, 보호와 온정주의 정책을 잇따라 도입했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천사가 왔다’며 열광했다. 파판드레우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겠다”고 선동했다. 우파정당조차도 포퓰리즘에 휩쓸린 유권자를 잡기 위해 더 심한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그런 사이 그리스는 지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생산 주체인 민간부문은 쪼그라 들었고 비생산 부문인 공무원 등 공공부문만 비대해졌다. 1970년 대 전반기까지 그리스 GDP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25%에 달했다. 국민 4명 중 1명이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2009년 공공부문 비중은 53%나 됐다. 민간부문의 생산증대와 소득증가, 세금확대로 이어져야 할 선순환 구조는 끊겼고, GDP는 곤두박질쳤다. 그리스 정부는 늘어난 복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빌려야 했다.

현재로서는 그리스가 빚을 갚지 못해 정말로 디폴트에 들어갈지 아니면 일부 빚을 갚는 선에서 채권국가들과 합의를 할 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유로에서 탈퇴해 유로화와는 별도의 자체 통화를 운영할 수 도 있다. 그럴 경우 그리스는 국제수지 적자에서 벗어날 것이지만 환율하락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의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공짜점심은 없는 것이다. 4~5면에서 그리스의 타락과 대중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심층 진단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