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동아리 ‘DEL’을 아시나요?

[생글기자 코너] 경제동아리 'DEL'을 아시나요? 등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이하 동대부고)의 경제동아리 DEL(Ddbk Economy Leaders)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창설한 경제동아리이다. DEL은 다양한 경제지식과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는 것이 주된 활동사항으로 꼽힌다. 한 달에 한 번씩 경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한다. 독후감을 쓰면서 서로 모르는 경제용어, 어려운 설명 등은 담당교사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지식을 축적해나간다. 지난 5월 30일 지식채널 E의 “피케티가 마르크스에게”라는 경제시리즈를 보고 찬반토론을 하였다.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는 곳에는 한국경제신문이 쓰인다. 1주에 1번씩 신문을 경제에 관련된 부분을 스크랩하는 것이다. 이 자료를 가지고 매주 2번 스크랩한 이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설명을 받는다. 이후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의견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해하는 활동을 해나간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학을 이론, 사례로만 접해 보았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이 점을 동기 삼아 경제를 체험하고 느끼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DEL 동아리는 첫 번째 목표를 실행에 옮겼다. 동아리원이 자발적으로 돈을 조금씩 모아 물건을 직접 구입한 것이다. 물품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를 한 후 온라인 판매가 1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유동인구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5월 초 황금연휴 마지막 날(5월 5일) 길거리에서 판매를 나섰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물품은 완판 되었고 수익금도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DEL은 원금과 수익금을 포함한 전액을 기부를 선택하였다. 네팔의 강진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리하여 5월 12일 32만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첫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쳤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실제로 돈을 모으고, 사용하고, 기획에 맞춰 사용해보며 경제를 직접 느껴보고 동아리원의 또 다른 성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DEL의 부장 정승원(19) 군은 “스펙 마련이 아닌 진정한 경제지식과 사회적 이슈까지 다루면서 경제공부를 재미있게 같이 해나가기 위해 DEL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또한 7월 경제캠프에 참여할 계획으로 “다양한 친구들과 만나면서 경제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설렙니다”라는 마음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할 말에 대해 묻자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원의 시간 맞추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잘 따라주고, 열심히 해주고 있어 항상 고맙다”라고 동아리 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단순히 스펙마련을 위해 동아리에 임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 DEL동아리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친구들과 토의를 하고, 관련 자료를 스크랩 하는 활동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런 활동을 지속한다면 학생으로써의 성장은 기본, 나아가 대한민국의 인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금경원 생글기자(동아마이스터고 2년) kwkum@naver.com

역사 속 경제 한 토막: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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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란 화폐가치가 하락하여 물가가 전반적,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현상을 말한다. 역사 속에서도 유명한 인플레이션와 초인플레이션이 빚어진 사례를 볼 수 있다.

첫 번째 예는 흥선대원군의 정책들 중 하나인 경복궁 중건에 쓰인 당백전의 발행이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에 따른 농민봉기, 세도정치에 따른 왕권 약화, 서양 세력의 문호 개방 협박 등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여러 개혁들을 단행했다. 왕권 강화 정책들 중 경복궁 중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원납전을 발행하여 기부금을 받고, 벼슬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등 돈을 모았지만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나온 화폐가 ‘당백전’이었다. 당백전은 상평통보의 100배의 가치를 지녔다. 쉽게 말하자면 1만 원의 100배인 100만 원짜리 지폐를 찍어낸 것이다. 5개월 동안 찍어낸 당백전의 양은 1600만 냥이나 됐다. 당백전을 발행하던 초기인 1866년 12월 말 쌀 한 섬(2가마)의 가격은 7~8냥이었으나 2년도 안 돼 6배까지 폭등했다. 화폐 가치는 폭락해 청나라 동전을 사용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물가는 크게 상승해 백성들의 삶은 어려워져 갔다. 결국 1868년 5월, 사용이 중지되었다.

두 번째 예는 독일의 인플레이션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은 독일에게 배상을 요구했고, 독일은 독일 화폐인 마르크로 주겠다고 한 다음 엄청나게 돈을 찍어 내서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마저도 1921년 4월 런던 회의에서 결정된 배상금 총액인 1320억 마르크 중 10억 마르크를 물어주고 주저앉았다. 화폐 남발의 역효과로 독일의 물가는 끝없이 치솟았으며, 돈의 가치가 너무 낮아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자가 아니었다. 그 무렵의 물가는 빵 한 조각이 800억 마르크, 쇠고기 한 조각이 9000억 마르크였으며, 노동자들은 하루치 임금으로 손수레에 가득 찬 지폐를 받아 가게로 몰려들었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실업자는 무더기로 늘어났고 독일은 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잘못된 예측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사건들이다. 신중히 고려되지 않은 통화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취약한 예측 능력은 이처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최재석 생글기자(용인신릉중 3년) aeseok1018@naver.com

아베의 역사의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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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련회 프로그램에 참가해 천안 독립기념관에 갔다. 평소라면 별다른 의미부여 없이 둘러보는 것으로 끝냈겠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사 왜곡 논란이 한창이던 때여서 보고 들은 것 중에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베와 그의 역사왜곡에 대한 기사를 많이 찾아서 읽어보았다.

지난달에 있었던 미국 의회 합동 연설에서 아베는 미성숙함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과연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죄할까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베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용수 할머니는 그의 방문지를 따라다니며 항의시위를 했다. 아베의 연설도 회의장에서 지켜보셨다. 하지만 아베는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침묵했다. 자신의 역사 왜곡과 부정에 대해 사과를 하기는커녕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사죄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고 수요 집회에 참여했던 생각이 났다. 수요 집회는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로 1992년 1월 시작됐다. 이제 시위는 대한민국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벌써 1180번째 집회가 열렸다.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 기록을 매주 세우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서부터 학생들, 외국인들, 심지어 양심 있는 일부 일본인들도 함께 모여 일본의 사죄를 촉구한다. 실제로 수요 집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수학여행 온 일본 고등학생들이 직접 준비해온 위안부 관련 연극을 하고 집회에도 참석했다.

일본 자국민들도 나서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진상규명에 힘쓰는 모습은 다소 놀라웠다. 일본을 생각하면 항상 아베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사죄하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는 일본인도 있었다.

이렇게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을 보자 국민과 국가를 책임진다는 일본 수상이라는 아베를 더욱 더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이를 왜곡하는 데에만 급급한 아베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많이 대비된다. 메르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70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과거의 실수에 대해 공개반성한 것처럼 말이다. 메르켈이 과거를 인정하고 사죄함으로써 유럽과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듯이, 이제는 일본도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왜곡된 것은 바로 잡고 사죄할 것은 사죄함으로써 아시아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원된 위안부 문제는 우리나라를 넘어 중국, 필리핀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그분들이 평생 가슴에 품어오신 한을 풀어 드려야할 것이다.

박민경 생글기자(목동고 1년) pmk3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