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29)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R.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 초판 서문에서, “이 책은 마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상 과학소설처럼 읽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책은 ‘생물학으로 쓰인 경제학 책’으로 비춰진다. “생물학으로 쓰고 경제학으로 읽는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의 대답은 ‘진화’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어떤 행성에서 지적인 생물이 생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스스로 자기의 존재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찰스 다윈(C. Darwin)의 ‘자연선택’을 원용해 지구상 모든 생물체의 존재 이유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일관된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종(種)’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종이 잔인한 ‘자연선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유전자’에 초점을 맞춰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라고 주장한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replicator)’로서 불멸이라는 것이다. 도킨스의 최대 기여는 진화의 기본 단위가 ‘종(species), 개체(individual)가 아닌 유전자(gene)’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도킨스에 의해 결정적으로 진화했다.
유전자가 인격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기적 유전자’는 일종의 ‘의인화(擬人化)’다. 유전자들이 지적 판단력과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논의는 생동감을 갖는다. 어떤 유전자가 자기 복사본의 수를 늘리려 고심한다는 것은, “자기의 사본(寫本)을 유전자 풀(한 종 내에서 유성 생식으로 서로 섞이게 될 유전자 집합)에 최대한 많이 퍼뜨려 전체 유전자 풀(pool)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증가시켜, 자연선택을 받으려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킨스 우주관에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대척점에 놓여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타주의는 자식과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도킨스에 의하면 이타주의는 “생존가능성이 높은 유전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이기주의의 연장인 것이다.
불멸의 코일과 생존기계
30억~40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되면서 이산화탄소, 물, 메탄, 암모니아 등의 혼합물이 자외선과 번개 등에 의해 ‘원시수프(primeval soup)’가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들어내는 주목할 만한 분자, 즉 ‘자기복제자’가 존재한다. 자기복제자는 스스로 복제가 가능하므로 ‘불멸의 코일’이다. 원시수프는 “오랜 기간 존속가능하거나 복제속도가 빠르거나 복제의 정확도(copying fidelity)가 높은” 안정적 분자들로 가득차게 된다.
이들 분자는 자기와 친화성을 가진 분자를 만나면 합쳐져 더 큰 분자가 된다. 한편 사본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돌연변이’다. 이러한 오류도 누적되고 확대되면서 ‘변종 복제자’의 개체군이 등장한다.
원시스프는 무한하지 않으므로 다른 종류의 복제자들 간에 단백질 벽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한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를 스스로 축조한다. 최초의 생존기계는 보호용 외피 정도였을 것이나, 점점 효과적인 생존기계를 갖춘 경쟁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생존기계는 더욱 커지고 정교해졌다. 모든 생물체는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자는 죽게 마련인 유기체를 버리면서 몸에서 몸으로 건너뛰는 불사조이다. 유기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나르는 ‘수레(vehicle)’이다. 인간사회에서 결혼은 수레의 제도적 수단이다. 도킨스는 수레를 “통합되고 질서정연한 복제자 보존의 도구”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에서 닭은 달걀을 더 많이 낳기 위한 ‘생존기계’ 내지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
왜 유전자는 이기적인가
‘이기적’은 음울한 단어이다. ‘불멸의 유전자(immortal gene)’도 매혹적인 어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불멸의 유전자’도 책 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 만큼 경쟁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다. 다윈주의 논쟁의 중심은 ‘선택 단위’의 수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수준의 단위가 자연선택의 결과로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종’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면, 개체들은 ‘종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기대해도 좋다. 그렇다면 종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출생률을 조절하거나 아니면 후대를 위해 사냥을 자제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종’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는 없다.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이기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가 합당하면, 개체들이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혈연 이타주의’ 행동은 이타적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예컨대 엄마가 아기를 위해 희생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가 들어있으며 나이가 어린 자식이 늙은 자신보다 유전자를 확산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대한 은유(metaphor)를 찾을 수 있다. 조정(漕艇)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수들 간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즉 ‘보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1명의 캡틴과 8명의 선수를 한 팀으로 가정할 때, 가장 이상적인 팀 구성은 “네 명의 왼손잡이와 네 명의 오른손잡이”일 것이다. 이러한 팀 구성은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때 안정의 의미는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멤버를 바꿀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안정된 상태’는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이는 시장에서 패자를 계속 솎아낸 결과 사후적으로 얻어진, 시장선택에 의해 얻어진 ‘결과’일 뿐이다. 코치(정부)는 어떤 선수가 오른손잡이고 왼손잡이인지를 모르며 또 알 필요가 없다.자연생태계에는 설계자가 없지만, 여전히 질서정연하다. ‘인간의 이성’으로 시장 질서를 설계하려 하지만 늘 ‘정책의 실패’를 낳는다. 경쟁을 백안시하고 시장을 억압하는 나라들은 가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도 ‘진화법칙’ 따른다
문화를 지닌 종(species)에서 진화는 ‘유전자 요인’들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따라서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가 중요하다. 도킨스의 또 다른 기여는 ‘문화의 진화과정’에 대한 탐구이다. 밈(meme)은 문화적 ‘복제자’로서 문화의 ‘전파 단위’이다. 유전자가 몸에서 몸으로 뛰어 건너면서 유전자 풀(pool)에서 자신들을 전파하는 것과 같이, 밈들은 ‘모방’의 과정을 통해 뇌에서 뇌로 건너뛰면서 밈 풀에서 자신들을 전파한다. 모방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밈의 표현형’이 다른 개체들의 감각기관에 의해 감지되면서 다른 개체들의 뇌에 자신들을 복제한다. 자신의 더 많은 복제가 또 다른 뇌들에서 만들어지면서 ‘표현형’은 더욱 확산된다. 전통노래 가락이 만들어지고 전수되는 것도 ‘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과 경제학을 넘나드는 인류 최고의 명저 중의 하나이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강력히 추천한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