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2) 간섭주의와 로마제국 멸망
무료 또는 절반가에 밀 공급
재원 부족하자 화폐 은 함량 낮춰
인플레이션에 임금·이자율까지 통제
도시와 농촌의 분업 붕괴
무료 또는 절반가에 밀 공급
재원 부족하자 화폐 은 함량 낮춰
인플레이션에 임금·이자율까지 통제
도시와 농촌의 분업 붕괴
![[세계 경제사] 인기 얻기 위한 빵값 통제가 시장간섭 불러…로마제국 '도농분업체계' 붕괴돼 생산성 추락](https://img.hankyung.com/photo/201506/AA.10117804.1.jpg)
전성기의 로마 인구는 어림잡아 100만명으로,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서양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제국에는 인구가 10만명 이상인 도시가 최소 6개나 됐다. 이전의 어떤 농경사회보다 도시화가 진행됐다는 의미다. 도시화는 지중해 전역에 걸쳐 도농 간 분업을 촉진해 교역을 발달하게 했다. 밀, 와인, 올리브오일 등과 같은 농산물은 로마를 중심으로 제국에 유입됐다. 교역량이 늘어나고 교역 범위가 확대되면서 로마제국 초기 상인은 산업혁명 이전의 그 어떤 지역과 시기의 상인보다 생산적이었다. 무역, 공공공사 등을 위해 금융중개를 위주로 하는 금융시장도 발달했다. 토지 소유권도 보장해 그 행사에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이것을 ‘피 심플(fee simple)’이라고 한다. 기원전 111년에는 국공유지의 상당부분을 사유지로 전환했다.
![[세계 경제사] 인기 얻기 위한 빵값 통제가 시장간섭 불러…로마제국 '도농분업체계' 붕괴돼 생산성 추락](https://img.hankyung.com/photo/201506/AA.10117802.1.jpg)
이렇듯 제국 초기 무역, 금융, 토지, 노동 등에서 자유시장이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황제들의 경제정책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제국시대 황제들은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두 가지 사업에 역점을 뒀다. ‘빵과 서커스’가 그것이다. 황제들은 검투사(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가 분한 막시무스 장군을 생각해보라)를 이용해 검투경기를 열었고 ‘안노나(Annona)’라는 식량분배제도를 통해 무산자들에게 식량, 특히 밀을 무료 또는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눠줬다. 때로는 생필품을 구입하라고 주화도 나눠줬다.
오늘날의 복지제도라고 할 수 있는 안노나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인구 100만명의 로마시에 안노나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적을 때는 10만명 정도고 많을 때는 30만명을 웃돌았다. 안노나로 나눠주는 밀의 가격은 무료거나 시장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았다. 안노나는 간헐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재정적 부담은 작지 않았다. 안노나를 위해 수입된 밀의 양은 로마 수입량의 약 15~50%라고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여기에 황제들은 군사비용도 마련해야 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군인에게 급료를 넉넉하게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군사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세금과 공물로 그 많은 비용을 댈 수 없었던 황제들은 주화에 들어가는 귀금속의 양을 줄이는 방법, 즉 ‘가치변조’를 이용해 시민으로부터 시뇨리지(화폐주조차익)를 징수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주화의 가치변조가 잦아짐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렸다. 황제들은 안노나를 위해 밀 가격을 정했는데, 점차 다른 곡물은 물론 임금, 이자율 등에까지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뿐 아니라 기원후 301년에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격을 통제하는 칙령을 반포했다.
![[세계 경제사] 인기 얻기 위한 빵값 통제가 시장간섭 불러…로마제국 '도농분업체계' 붕괴돼 생산성 추락](https://img.hankyung.com/photo/201506/AA.10117803.1.jpg)
로마의 시장경제가 노예제 때문에 멸망했다거나 로마가 점점 더 퇴폐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야만인에게 정복당했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로마가 게르만 이주민의 반란을 군사적으로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했다는 주장도 틀렸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경제학 용어로는, 로마는 복지정책, 인플레이션, 가격규제 때문에 시장경제가 무너졌고 그 결과 야만인을 대적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복지정책, 인플레이션, 가격규제 등을 총칭해 간섭주의라고 한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다. “로마제국은 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말함) 정신과 자유기업 정신을 결여했기 때문에 산산이 부서져 먼지가 됐다. 간섭주의 정책과 그 정치적 귀결인 ‘총통원리(모든 걸 황제 혼자서 결정하는 체제)’가 어떤 사회적 실체건 항상 해체하고 파괴하듯이 강력한 제국도 해체했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