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6가지 혁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1)
논술 필독서
논술 필독서
스마트폰, 인터넷, 에어컨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우리가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물건들도 최초에는 역사를 뒤바꾼 혁신적 발명품이었습니다. 유리나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 전구조차 없던 세상에서 편리한 현대 세계로 우리를 이끈 것은 누구였을까요?

오늘날 세상의 모습을 만든 건 우리가 이름조차 못 들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재미 삼아 연구하고, 발명해내고, 뭔가를 개선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는 현대인의 삶에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6가지 혁신을 조명하는 책입니다.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존슨은 이 책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현대 문명을 만든 위대한 아이디어의 역사를 살핍니다. 이른바 ‘롱 줌(long zoom)' 역사관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혁신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요.

책에서는 유리, 냉기, 소리, 청결, 시간, 빛이라는 6가지 부문의 혁신을 소개합니다. 이 혁신의 산물을 소개하면서 테크놀로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나 발전했으며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추적하고 있지요. 각 분야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부터 시작해서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달라지며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결국 그 아이디어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해갑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의 역사

로버트 훅이 설계한 초기의 현미경.1665년
로버트 훅이 설계한 초기의 현미경.1665년
예컨대 먼 옛날 어느 사막에서 이산화규소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유리가 발명됐고, 인쇄술의 발명으로 안경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유리 제조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안경, 즉 렌즈의 발명은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죠. 또 망원경의 발명으로 천문학의 발전이 가능했고,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학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세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컴퓨터를 만드는 게 가능했을까요?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컴퓨터칩이 어떤 곳에서 생산되는지 생각해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컴퓨터칩이 생산되는 청정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사람 몸에서 나오는 피부 세포 등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든 입자의 발생과 유입이 억제되는 곳이지요. 세균의 발견과 청결과 관련된 부문의 혁신이 없었다면 컴퓨터의 등장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처럼 한 분야의 혁신이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분야의 혁신을 끌어내는 현상을 가리켜 저자는 ‘벌새효과(hummingbird effect)’라고 지칭합니다. 벌새효과란, 식물이 꿀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하자 그 꿀을 얻기 위해 벌새가 날개 구조를 진화시킨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꿀을 빠는 동안 공중에 떠 있어야 하는 벌새는 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꽃 주변을 맴돌 수 있는 비행술을 진화시켰습니다. 식물의 번식 전략이 벌새의 날개 구조까지 변화시킨 셈이지요. 저자는 아이디어와 혁신의 발전 과정에도 이 같은 벌새효과가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사회개혁

진공관 발명의 디딤돌을 놓은 리 디 포리스트. 1920년대 말
진공관 발명의 디딤돌을 놓은 리 디 포리스트. 1920년대 말
19세기 말 미국의 기자였던 제이컵 리스는 빈민가 공동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빈민가 공동주택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죠.

당시 미국의 맨해튼에는 1만 5,000가구의 공동주택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리스는 이런 처참한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열악한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사진만이 현실을 그대로 포착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때마침 섬광을 이용한 사진술이 개발됐고 리스는 이를 연구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화약을 이용한 위험한 실험을 계속하며 화재와 실명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생 끝에 마침내 리스는 빈민가의 처참한 모습을 담은 사진은 찍을 수 있었고 결국 그 사진 한 장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리스의 강렬한 사진은 여론을 바꾸는 데 일조하며, 미국 역사에서 사회개혁이 대대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리스의 사진이 발표되고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뉴욕 주는 공동주택법을 제정했습니다. 리스의 사진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공장 작업 현장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효과도 거뒀습니다. 그야말로 사진 한 장이 미국에서 사회개혁이 시작되는 발판이 된 것이죠.

누군가 빛이 없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기술을 처음 발명했을 때 그 기술이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 환경을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어떤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면 그 이후에는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의외의 결과가 생겨납니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와 혁신의 연쇄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든 셈이지요.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저자 스티븐 존슨

[생글생글] 사하라 사막의 모래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에 포함된 과학 저술가. 브라운대학교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그의 저서는 모두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온라인 매거진 〈피드〉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지냈으며 인터넷 포럼 사이트 플라스틱닷컴(Plastic.com)을 개설하고 <와이어드>의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과학전문잡지 〈디스커버〉에 ‘최신 기술’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가디언〉 등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공헌하는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등이 있다.

추경아 한경BP 편집자 c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