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1) 정치적 경기순환
공화당 집권 땐 물가↓·실업률↑
민주당땐 그 반대
욕심이 주무른 정책 부채급증 부메랑
‘문제는 바로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는 미국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후보 시절인 1992년 당시 백악관 주인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도전하며 내걸었던 선거 구호였다. 이 슬로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부시 전 대통령은 전쟁에서 승리한 업적을 가진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또 ‘내 입술을 읽어라, 새로운 세금은 없다(Read my lips! No new taxes)’고 약속했던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한 세금 인상이 얼마나 유권자에게 실망감을 안겼는지를 이해하고 공략했던 클린턴의 선거 전략은 ‘경제문제’가 한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유권자의 척도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사정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기초단체장 후보자들에서부터 대선 주자들에 이르기까지 선거에 출마하는 대다수 후보들은 자신의 ‘경제공약’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공화당 집권 땐 물가↓·실업률↑
민주당땐 그 반대
욕심이 주무른 정책 부채급증 부메랑
수많은 유권자의 이목을 끌고 선택을 이끌어내야 하는 후보들이 앞다퉈 경제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들어서며 자신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서 어느 후보가 가장 좋을까를 생각한다. 고용안정도, 물가상승률, 경제성장 등 각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 요인은 다를 수 있으나 경제문제의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이 현재 유권자가 생각하는 지역이나 국가 대표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유권자의 선택과 행동을 ‘역이용’하려는 욕구가 정부 및 정치권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유권자의 선택은 정치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장기적 성장 동력의 훼손, 과다한 미래비용 등 사회비용을 초래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변화를 꾀하게 된다. 즉 재정확대, 통화팽창 등 거시적 확장정책으로 인한 장기적 사회비용과 당선 확률의 제고라는 단기적 개인 편익 간의 정치적 계산은 항상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정치인의 개인 편익이라는 손을 들어주며 각종 확장정책의 버튼을 누르도록 집권당의 지도자를 현혹시킨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시경제정책이 이용되는 현상은 각종 경제지표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정치 시장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양당체제로 구성돼 있다. 이분법적 구분은 불가능하지만 대다수 국가가 그렇듯이 미국의 유권자들도 고소득층은 보수적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인상률을 선호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진보적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선호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백악관의 주인이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으로 뒤바뀌며 나타났던 미국 경제의 거시지표는 수많은 거시경제정책들이 대통령의 지지층에 친화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집권 후 20세기 후반기 4년마다 돌아오는 대선 연도의 미국 실업률은 일곱 번의 공화당 대통령 임기 하에서 전년 대비 평균 1%포인트 상승했으나 물가상승률은 평균 1.4%포인트 감소했다. 반면에 다섯 번의 민주당 대통령 임기 하에서 대선 연도의 미국 실업률은 전년 대비 평균 1.2%포인트 감소했으나 물가상승률은 평균 2.2%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거시경제지표의 변화는 재선이나 당의 재집권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시경제정책이 운영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시경제정책이 이용됐다는 징후를 알 수 있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13대 대선 직전에 실업률은 하락하고 물가도 안정세를 보인 반면 대선 직후에 실업률과 물가가 상승하는 추이가 나타났다. 특히 거시경제정책을 뒤돌아보면 대선 연도에 부동산 및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출이 증가해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시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변동의 전환점인 기준순환일, 즉 경기정점과 대선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은 한국 거시경제정책의 주요 결정요인이 정치적 동기임을 시사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시경제정책이 ‘이용’됐다고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집권당에 따라 실업률이나 물가상승률이 하락했으니 확대적 거시정책을 통한 효과가 경제를 활성화시킨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시경제정책이 단기적으로 운영되며 발생하는 폐해는 공공선택학의 태두로 꼽히는 뷰캐넌과 와그너가 공저한 《적자 민주주의: 케인스의 정치적 유산》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미미하게 여겨졌던 재정적자가 종래는 크나큰 국가부채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약 5년간 재정흑자를 기록한 대다수 미주 및 유럽 국가들은 단기적이며 지극히 케인스적 정책을 도입해 연속적인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또 급증한 국가부채가 끝내는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2008년의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잘 보여준다.
물론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단기적 재정확대 처방으로 우선 넘기고 미래에 갚아 나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거시경제정책을 사용할 동기는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케인스적 재정정책은 항상 집권당의 지도자에게 매력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유권자 또한 이런 재정정책의 폐해를 미리 예측하고 정부 수입과 지출 간의 균형 유지를 요구할 만큼 초(超)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다수 유권자에게 소득이전, 복지, 실업률 감소 등은 눈에 바로 들어오는 혜택이지만, 미래의 세금과 국가부채 문제는 그저 한 귀로 흘려보내면 그만인 경고일 뿐이다. 오늘의 경제정책이 미래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기간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미래의 비용을 무시하는 정책이 수용 가능한 현재 정치제도의 보완 없이는 증가하는 국가부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정당의 기본 목적이 정권 창출이며 그를 위한 필요조건이 유권자의 표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한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각종 정책을 이용하려는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다. 민주주의 하에서 수많은 정책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공선택학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제도’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정책의 유일한 방지책은 사전적으로 정책의 영역을 제한해 정치인의 손과 발을 묶어 놓는 것이다.
윤상호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