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0) 합리적 무지
정책 이익보다 조사비용 더 커
투표 하기보다 등산·낚시 가거나
정부 정책 무조건 반대하기도
공공문제에 대한 무관심 지속될수록
공공정책에 의한 약탈 희생자 되기도
2014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간 비용은 9141억원이다. 유권자는 총 4129만6228명이었으니 한 명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끄는 데 2만2135원이 쓰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라 전체로 보면 엄청난 금액이지만 개인으로 축소해 보면 그리 많은 돈이 소요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정책 이익보다 조사비용 더 커
투표 하기보다 등산·낚시 가거나
정부 정책 무조건 반대하기도
공공문제에 대한 무관심 지속될수록
공공정책에 의한 약탈 희생자 되기도
유권자 한 명이 던진 한 표의 값어치는 정확히 어림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대개의 유권자는 그리 크다고 생각지 않는다.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드는 비용과 행사 이후 편익은 시장에서 상품을 사는 것과 달라 유권자들은 종종 ‘합리적 무지’를 선택, 투표권 행사를 외면하곤 한다. 근 1조원이 들어간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56.8%에 그친 사실이 이를 설명해준다.
‘합리적 무지(合理的 無知·rational ignorance)’. 서로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일반 시민은 정부정책 등 공적(公的)인 문제들의 내용과 파급효과를 면밀히 조사하는 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사익(私益)을 챙기기에도 바쁜 생활의 연속이어서다. 정부정책을 들여다본다고 하더라도 그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 설사 정책이 잘못됐다고 혼자 목소리를 높여봐야 누가 들어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라면 대개 공적인 일에 대해 ‘의도적 외면’을 택하는 것이다. 길게 보면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의 행복에 직결된 사안인데도 말이다. 이런 역설은 일반 시민이 정부 정책, 투표 등 공적인 일에 관련된 여러 선택지를 탐색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시민이 시간을 더 들여 공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자신의 한 표가 더 나은 정치지도자나 정책의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보다 나은 정책과 더 나은 후보자 선출로부터 얻는 사회적 이익 중에서 각자 챙길 수 있는 몫은 아주 작을 것이다.
시민이 100만명인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회의 한 시민이 공공정책으로부터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의 몫은 산술적으로 사회적 총이익의 100만분의 1(=0.000001)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무슨 일에 종사하든 공공정책을 정통하게 꿰뚫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 이처럼 개개인이 공공정책으로부터 얻는 편익은 아주 작지만, 공공정책을 조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아주 크다. 이 때문에 시민은 공적 문제에 대해 ‘무임승차’를 하거나 ‘합리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이다.
투표의 경우를 보자. ‘어느 한 유권자가 공공정책에 대한 투표행위로부터 얻는 편익’은 단순히 ‘선거 결과가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이익’만이 아니라 여기에 ‘자신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확률’을 곱함으로써 계산된다. 그러나 한 명의 유권자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0이거나 0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투표행위로부터 얻는 편익은 0이거나 0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용에 비해 편익을 거의 누릴 수 없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반 시민은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공공문제를 합리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이로써 유권자들이 투표 당일 투표장에 가지 않고 낚시나 등산을 떠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
합리적 무지에 관한 이런 논의는 현대 사회의 여러 모순되는 정책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예를 들면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소득세 과표구간에 따른 누진세제를 운영하지만, 소득세 탈루 기회는 오히려 소수의 부유한 납세자에게 더 많이 열려 있다. 왜 이런 모순되는 결과가 빚어질까.
소득세의 누진성은 유권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문제로 많은 유권자는 이 문제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 이에 편승해 대중인기영합주의자들과 다수결주의자들은 소득세 누진율 강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 성장속도보다 빠르다며, 이로 인한 소득불평등 심화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글로벌 부유세 등 누진세 도입을 주장해 인기를 모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법의 세부사항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 종종 소수의 조직화되고 부유한 납세자만이 편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합리적 무지는 비효율적인 ‘큰 정부’를 초래하는 원인으로도 지적된다. 그러나 조지 애컬로프 교수의 ‘레몬시장(lemon market)’ 모형에 따르면 좀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만 차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면 아무 정보가 없는 구매자는 구매를 꺼릴 것이고 그러면 중고차 시장이 위축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이 크면 정치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보비대칭 아래에서 무지한 유권자들의 합리적 반응은 ‘정부 사업의 질을 잘 모르거나 의심스러우면 지지하지 않는 것’이어서다. 그 결과 비대칭적인 정치 정보는 정부를 오히려 더 작게 만들 수 있다. 유권자들의 합리적 무지가 민주주의에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공공정책에 대한 중요 정보가 증권시장 등에서 큰 이익을 창출하는 예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은 자신의 소득과 행복 또는 성공 가능성이 공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나 조사에 의해 증가되거나 향상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은 전적으로 이기적이지 않으며, 간혹 이타적(利他的)일 때도 있다. 이런 ‘이타적 동기’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합리적 무지는 일상생활에서 ‘규범’과도 같다. 일반 시민과 유권자들이 공공문제와 투표에 대해 갖는 합리적 무지는 곧 대다수 사람이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각종 ‘공공정책에 의한 약탈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공공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합리적 무지’가 아니라 ‘합리적 유지(有知)’의 태도를 가져야만 자신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다.
이성규 <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