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7) 한국 자본주의와 '간섭주의'

사유재산·계약자유 없는 사회주의
'경제계산' 불가능해 자원배분 오류
주택·복지 분야 '간섭주의' 경계를
[세계 경제사] 시장가격보다 낮은 등록금, 과잉수요 초래…대학 정원 등 '시장간섭'에 자원배분 왜곡
한국은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교육, 의료, 금융, 시내버스 등 분야에서는 사회주의 방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기업과 정부조직 운영의 상당 부분에서도 사회주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또 주택 등의 부문에서는 간섭주의 비중이 크며 그 역사도 길다. 최근에는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정책을 찬성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복지정책은 간섭주의의 변종일 뿐이다. 간섭주의는 결국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한마디로 한국이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생각은 틀렸다.

반(反)사회주의자뿐 아니라 사회주의자까지도 ‘인센티브 문제’를 사회주의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는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일할 것이고 누가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같은 힘든 일에 종사할 것인가.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920년 독일어로 된 논문에서 “사회주의는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립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920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경제계산이란 경제 행위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도구다. 사회주의 계획가는 무엇을, 얼마나,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생산할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생산이 이뤄지더라도 완전히 임의적이고 혼란스럽다. 경제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 자원의 부적절한 배치, 많은 거래비용 등으로 경제 성장은 매우 저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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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에서 경제계산이 불가능한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토지 같은 생산요소와 생산설비 같은 자본재를 거래하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그 결과 그런 것들에 대한 가격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생산요소와 자본재에 대한 사적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격이 존재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는 그 가격을 토대로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학자 아브라함 베르그송은 1948년 에세이에서 “현실적으로 소련의 계획경제는 30년 동안 작동하고 있고 바로 그 이유로 사회주의는 가능하다”며 미제스의 ‘경제계산 문제’를 부정했다.

이에 대해 미제스는 1949년 발행된 인간행동에서 “소련과 동유럽은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 세계 자본주의 시장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다”고 지적하면서 “공산주의 계획가들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세계 시장가격을 이용했다”고 반박했다.

옛 소련의 경제계획자 또는 경제계획위원회는 경제계산에 이용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에 나오는 상품 가격까지 복사했다. 그리고 서방의 한 기자가 고르바초프의 대변인에게 인류에 대한 그의 희망이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그 대변인은 “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세계가 사회주의를 채택하는 것을 보기를 희망한다”고 대답했다. 기자는 “그런데 왜 뉴질랜드는 제외하느냐”고 물었다. 대변인은 “글쎄, 우리는 가격을 가져올 어떤 나라가 필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제스의 ‘경제계산 문제’는 사회주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재 시장이 사라지는 어떤 경우에도 경제계산 문제를 응용할 수 있다고 미제스의 제자 머레이 로스바드는 지적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영국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1937년 “기업의 크기는 기업 내부에서 생산하는 경우에 드는 비용과 시장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 즉 가격체계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은 자유시장체제에서도 ‘최적량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 자체가 계획기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이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기업이라는 계획기구는 자발적인 조직이지만, 사회주의에서의 계획은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라는 것이다.

기업의 크기는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코스의 분석에 미제스의 경제계산 개념을 응용할 수 있다. 만약 기업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이에 따라 그 기업이 생산하는 재화의 생산에 필수적인 자본재 시장들이 점차 사라지면 기업 내부 생산 또는 기업 내부 계획에 필요한 비용은 빠르게 증가한다.

[세계 경제사] 시장가격보다 낮은 등록금, 과잉수요 초래…대학 정원 등 '시장간섭'에 자원배분 왜곡
그 결과 자유시장에서는 기업이 계속해서 성장하더라도 세계에서 하나의 기업만 존재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생산품 또는 자원의 자본재 시장들이 사라짐으로써 경제계산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시장에서는 적정량의 계획이 유지되도록 하는 내재된 안전장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한 시장 또는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거대기업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제를 조직하는 원리로서 사회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경제계산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확해진다. 국가가 불환지폐의 발행을 독점하고 금융을 통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됐으며, 때로는 매우 높았다.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계산이 부정확해지는 시장경제는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주의 체제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낫지만 경제계산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재화의 교환비율인 가격은 경제주체가 경제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정신적 도구다. 그런 가격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가 필수다. 미제스는 “우리의 문명은 경제계산 방법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 귀중하고 지적인 도구를 버린다면 문명은 소멸할 것”이라고 오래전에 예언했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