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3) 반면교사 삼아야 할 복지파탄 그리스
지난달 24일 구제금융이 4개월 연장됨에 따라 그리스는 적어도 6월 말까지는 국가 부도를 면할 수 있게 됐다. 그리스는 2010년 5월부터 2차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었다. 이 구제금융이 2월 말로 끝나게 됐는데 이번에 연장된 것이다. 만일 6월 말 이전에 유로존의 추가 유동성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스는 결국 국가 부도를 맞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그리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실현하며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남긴 위대한 역사를 지닌 국가다. 그런 그리스가 현대에 와서 경제적, 정치적 파탄을 상징하는 국가가 됐다. 그리스는 잘못된 제도를 도입할 경우 국가가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그리스의 비극은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사실 그리스는 1929년부터 1980년까지는 비교적 우량한 국가에 속했다. 이 기간 쿠데타와 독재, 내전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2%에 달했으며, 1981년 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8%, 재정적자는 3% 미만이었고, 실업률도 2~3% 수준인 건실한 국가였다. 이런 국가가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81년 총리에 취임한 파판드레우는 즉각적으로 연금과 임금을 대폭 인상했고, 의료보험을 확대하며 그리스 포퓰리즘의 토대를 구축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연금이 많을수록 돈이 많이 돌아 자기가 이끄는 당인 사회당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용할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과 오지에 많은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이런 복지프로그램은 돈이 많이 들었다. 그는 그 비용을 EC(유럽공동체·EU의 전신)로부터 빌리거나 보조를 받아 충당했다. 그 결과 파판드레우 집권 8년 사이 그리스의 국가 부채 비율은 GDP의 28%에서 80%로 대폭 증가했다. 지금은 175%에 달한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목표로 삼은 것 중 하나가 노동자 지위 향상이었다. 그는 노동자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조 편향적 입법을 추진하며 파업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노동자 임금은 급격하게 상승했지만 생산성은 떨어졌다. 외국 기업들을 ‘노동 착취자’로 인식했다. 외국자본의 투자가 고갈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기업들이 그리스를 떠나갔다.
사회당은 집권 기간(1981~1989년)에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줬다. 그리스 국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해외유학을 보내줬고,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를 위해 그리스로 오도록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일을 하는데 상당히 많은 국가 돈을 갖다 썼다. 국가 돈이 당의 정치자금과 개인계좌로 빼돌려졌다.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정치인들은 무감각했으며, 의원들은 부와 특권을 누렸다.
이런 부정부패와 경제 쇠퇴로 인해 1991년 정권이 신민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신민당도 국가를 개혁하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복지를 줄이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회당이 참으로 나쁜 정치적 유산을 남긴 것이다. 신민당은 복지정책을 더욱 확대하는 쪽을 선택했다. 노동조합과 결탁하고 지지자들을 공무원으로 고용하거나 지지한 집단을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와 법을 제정했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양 정당은 경쟁적으로 복지 포퓰리즘, 정치적 후견주의 정책들을 제공했다. 오늘날 그리스의 비극은 양 정당이 경쟁적으로 제공한 이 포퓰리즘 정책들의 결과다.
그리스에서 공공부문은 신의 직장이다. 공공부문 근로자는 퇴직 후 연금액이 퇴직 시 근로소득의 100~110%를 받기도 한다. 연금제도는 일반적으로 민간 근로자보다는 공공부문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민간 부문 근로자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공공 부문 근로자 간에는 보이지 않는 시기와 질투가 존재한다. 쓸데없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이제는 2~3명이 한다.
사실 그리스 위기는 2001년에 찾아왔다. 그리스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고 경제체질을 개선해 늘어나는 재정지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유로존 가입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다시 정권을 잡은 사회당은 국가 부채 데이터를 하향 조작해 유로존에 가입했고, 유로존 가입 덕택에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며 재원을 마련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가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같은 유로존의 건실한 국가가 그리스와 같은 부실한 국가를 암묵적으로 보증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연장시키며 오히려 악화시킨 독이 됐다. 그리스는 그렇게 마련한 돈을 저축, 투자, 인프라 구축, 제도개혁 등에 지출한 것이 아니라 소비 지출에 썼다. 그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2008년 3만2000달러, 민간 지출이 EU 평균보다 높은 12%에 달했다. 그 덕분인지 그리스는 인간개발지수와 삶의 질 지수에서 세계 2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속 빈 강정일 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돼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고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남의 돈으로 ‘파티’를 즐긴 결과였다.
그리스가 주는 교훈은 경제적 번영은 결코 정부의 지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포퓰리즘 정치는 결국 국가를 쇠퇴시킨다.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돌이키기 힘든 것이 바로 포퓰리즘 정책이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