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44) (주)동인도회사의 등장

황금알 낳는 동서양 교역
선단조직·물자 조달 비용 커
위험 줄이려 주주가 책임 나눠

근대적 형태의 첫 주식회사는
1600년 등장한 英 동인도 회사

투자금 배분 않고 항구적 이용
회사의 안정적 운영 가능해져
산업화 때 자금조달 창구 돼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예부터 동서양 간 교역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런 교역의 이익을 얻고자 사막이나 산맥과 같은 지리적 장애를 극복하며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튀르크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육지를 통한 교역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바닷길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기에 이른다. 이 항로를 포르투갈이 독점해 영국이나 프랑스는 러시아의 북쪽을 돌아 중국으로 가는 항로 개척을 시도했다. 그래서 1553년 세 척으로 구성된 선단이 영국을 떠나 동북항로, 즉 지금의 북극항로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출발 6개월 후 두 척의 배가 북극해에 발이 묶이면서 선원들은 모두 굶어 죽거나 동사했다. 이것은 16~17세기 바닷길 개척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보여준다.

수익이 높더라도 위험이 크면 개인이 사업을 하기 어렵지만 주주가 유한책임을 지는 주식회사라면 가능하다. 다수의 주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책임의 기원은 위험한 해상교역에서 찾을 수 있다. 11세기 이탈리아의 무역업에서 ‘코멘다(commenda)’라는 사업 형태가 등장한다. 한쪽은 해상교역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다른 쪽은 항해를 책임지는 동업이다. 동업 형태지만 자금 공급자는 유한책임만 졌다. 배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자금 공급자가 추가로 떠안는 책임은 없었다. 사실상 항해를 책임지는 쪽과 거래하는 제3자는 대부분 자금 공급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로버트 W 힐만, ‘역사적으로 본 유한책임제도’, 워싱턴&리 로 리뷰 615, 1997). 비록 유한책임 형태로 사업이 진행됐지만 이것은 오늘날 주식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항해가 끝나면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회사가 청산되기 때문이다.

근대적 형태의 주식회사는 1600년 등장하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다. 이 회사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희망봉 동쪽의 무역에 관한 독점권을 15년간 얻게 된다. 이런 권한은 1609년에 이르러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지 않는 한 무한정으로 연장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역사상 최초로 주주에게 유한책임을 허용한 회사 중 하나였다. 회사가 무한정 존속할 수 있다면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주주가 유한책임을 지면 주식을 자유롭게 매각할 수 있게 돼 자금 조달이 쉬워진다. 투자자가 무한책임을 진다면 자신의 지분을 매각할 때 공동투자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회사가 어려울 때 누군가 지분을 매각하고 떠나면 남아 있는 투자자가 회사 부채를 모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한책임이 되면 투자자 누구나 투자금액만큼만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공동투자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자신의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투자자와 경영자의 사업 방향에 대한 의견 불일치도 줄어든다. 경영자의 사업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주는 언제든지 주식을 매각하고 떠나면 되기 때문이다. 주식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지면 결국 투자자와 경영자의 사업 방향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식 거래가 처음부터 활발하지는 않았다. 1657년에 이르기까지 선단을 조직할 때마다 주식을 모집했고 선단이 돌아오면 수익을 배분했다. 투자자의 자금은 선단이 돌아와 수익이 배분되는 몇 년 뒤에는 회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자본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그래서 1657년 회사에 부여한 특권이 개정되면서 투자자금을 배분하지 않고 항구적으로 이용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서는 이때부터 커피숍에서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사] '주주 유한책임' 허용 주식회사 체제, 해상무역 시대 열었다
주식의 시장 거래는 영국보다 네덜란드에서 먼저 시작됐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국 동인도회사보다 2년 늦게 설립됐다. 처음 자본을 모집할 때 암스테르담에서만 1143명의 주주가 참여했다. 그런데 투자자금을 배분하지 않고 주주의 변경을 가능케 한 점이 영국과 달랐다. 그래서 1602년 자금 모집이 이뤄지면서 주식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607년에는 회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 거래도 나타났다(L O 페트람,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 2011).

주식회사가 자본을 배분하지 않고 항구적으로 사용하면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주식회사는 다음 시기에 등장하는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자금 조달의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주식 거래는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을 가능하게 해 금융 혁신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역사학자들은 언제부터 현대사회가 시작되는지에 대해 자주 논쟁을 벌인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1440년, 콜럼버스가 미국에 도착한 1492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1517년 등이 단골 후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지는 1600년 12월 말을 내세운다. 그날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동인도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준 날이다. 주주에게 유한책임을 허용한 회사가 등장한 것이다(이코노미스트 2011년 12월17일자 ‘동인도회사’ 기사).

주식회사는 모험적 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등장했다. 이것은 모험적 사업의 위험을 유한책임을 지는 다수의 주주에게 분산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모험에 따른 위험이 줄어들면 모험을 시도하려는 사람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식회사의 등장은 세계를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