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달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오는 3월부터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사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적 완화는 내년 9월까지 계속될 계획으로 규모는 1조1400억유로(약 143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드라기 총재는 “물가상승률 2% 달성이라는 중기 목표에 따라 양적 완화를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9월 이후에도 추가 유동성 공급이 계속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2%까지 떨어지고, 11월 실업률이 11.5%를 기록하는 등 유로존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ECB가 예상보다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매달 600억 유로어치 국채 매입
지난 달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밝은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7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로화를 지키겠다”고 밝히며 상황을 반전시킬 때와 똑같은 색이다.
기자회견 직전 시장은 ECB가 3월부터 매월 500억유로의 돈을 풀 것으로 예상했지만 드라기 총재는 100억유로 더 많은 돈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9월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를 밑돌면 양적 완화를 계속할 수 있다고 밝혀 최장 2년을 예상했던 전망도 뛰어넘었다. 그는 “국채 등 공공 및 민간부문 채권을 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CB는 지난해 말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커버드본드 등을 매입하며 금융회사 등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전면적인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 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처음이다.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양적 완화 규모는 그만큼 유럽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드라기 총재의 ‘승부수’
ECB의 양적 완화는 예상돼 왔다.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0.2%(전기 대비)까지 낮아졌고,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어렵다. ‘디플레이션 공포’도 유로존을 휩쓸었다. 지난해 12월 유로존의 물가는 전월 대비 0.2% 하락했다.
드라기 총재는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를 위해 유로존 회원국 중앙은행은 ECB에 대한 출자액 규모별로 채권을 매입할 예정이다. 김정호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ECB가 디플레이션 제어에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은 즉시 움직였다. 발표 후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15달러 아래로 급락하며 2003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증시는 환호했다. 유럽 주요 증시는 장중 1% 안팎의 상승세를 나타냈고 뉴욕 증시도 상승 출발했다. 중국 홍콩 인도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이날 ECB 발표 기대감에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에 미온적인 상황이라 풀린 돈이 기업이나 개인에게까지 도달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은행에 의존하는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며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도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글로벌 디커플링 심화될 듯
ECB가 돈 풀기에 나서는 반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긴축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돼 세계 각국은 올해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날 캐나다가 주요 7개국(G7) 중 올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반면 브라질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의 환율 갈등 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스위스 등은 자국 통화가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반면 브라질과 러시아 등 취약 신흥국은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각국 통화가치의 절상과 절하 움직임이 뒤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뉴욕=이심기 특파원 yykang@hankyung.com
매달 600억 유로어치 국채 매입
지난 달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밝은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7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로화를 지키겠다”고 밝히며 상황을 반전시킬 때와 똑같은 색이다.
기자회견 직전 시장은 ECB가 3월부터 매월 500억유로의 돈을 풀 것으로 예상했지만 드라기 총재는 100억유로 더 많은 돈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9월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를 밑돌면 양적 완화를 계속할 수 있다고 밝혀 최장 2년을 예상했던 전망도 뛰어넘었다. 그는 “국채 등 공공 및 민간부문 채권을 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CB는 지난해 말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커버드본드 등을 매입하며 금융회사 등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전면적인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 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처음이다.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양적 완화 규모는 그만큼 유럽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드라기 총재의 ‘승부수’
ECB의 양적 완화는 예상돼 왔다.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0.2%(전기 대비)까지 낮아졌고,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어렵다. ‘디플레이션 공포’도 유로존을 휩쓸었다. 지난해 12월 유로존의 물가는 전월 대비 0.2% 하락했다.
드라기 총재는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를 위해 유로존 회원국 중앙은행은 ECB에 대한 출자액 규모별로 채권을 매입할 예정이다. 김정호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ECB가 디플레이션 제어에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은 즉시 움직였다. 발표 후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15달러 아래로 급락하며 2003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증시는 환호했다. 유럽 주요 증시는 장중 1% 안팎의 상승세를 나타냈고 뉴욕 증시도 상승 출발했다. 중국 홍콩 인도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이날 ECB 발표 기대감에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에 미온적인 상황이라 풀린 돈이 기업이나 개인에게까지 도달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은행에 의존하는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며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도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글로벌 디커플링 심화될 듯
ECB가 돈 풀기에 나서는 반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긴축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돼 세계 각국은 올해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날 캐나다가 주요 7개국(G7) 중 올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반면 브라질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의 환율 갈등 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스위스 등은 자국 통화가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반면 브라질과 러시아 등 취약 신흥국은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각국 통화가치의 절상과 절하 움직임이 뒤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뉴욕=이심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