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3)

(1)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다
(2) 신석기 혁명, 농사를 짓다
(4) 하늘과 인간 연결해 주는 솟대 신앙
(5) 고구려,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다
(6) 한반도 남쪽으로 눈을 돌린 장수왕…
지난 2000년, 유네스코(UNESCO)는 우리나라 고창·화순·강화 지역의 돌덩어리 2만여기를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세계유산 제977호’로 지정합니다. 분명 단순한 돌덩어리들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9년 뒤에야 조선의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돌덩어리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인돌입니다. ‘턱을 괴다’라는 표현처럼, 거대한 덮개돌이 쓰러지지 않도록 2~4기의 돌로 지탱하는 모양을 따서 부른 표현입니다. 단, ‘괸돌’은 틀린 표현이랍니다.
각저총.
각저총.
고인돌은 전 세계에 약 8만기가 있고 그 중 약 4만여기가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단하지요? 더 나아가 이 고인돌은 곧 청동기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열쇠입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무게와 크기의 돌을 올릴 정도의 강력한 지배자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배와 피지배가 성립하는 시기는 강력한 금속제 무기가 등장하는 청동기 시대부터입니다. 실제 강화도의 탁자모양 고인돌 중 하나는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80t에 달하고 길이는 7m가 넘습니다. 최소한 500명의 성인 남자가 동원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고인돌이지요. 또한 이 고인돌은 비파형 동검과 민무늬질그릇 등과 함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의 영역을 알려주는 유물입니다.

비파형 동검의 나라, 고조선

[한국사 공부] 고조선은 살아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
고인돌에서 인골과 비파형동검, 민무늬질그릇 등이 발견되면서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 등과 함께 대표적인 무덤임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또한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한 흔적도 찾았습니다. 심지어 북두칠성과 같은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고인돌도 발견하여 당시 천문 활동도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자,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으로 넘어가 봅시다. 구리에 주석을 넣어 악기 비파처럼 만든 청동검이 비파형동검입니다. 이제 석기의 시대가 저물게 되는 것이지요. 중국이나 유목 민족의 청동검과 달리 칼몸과 손잡이가 분리되며, 날이 S자형으로 휘어져 있고 칼몸 중앙에는 일자형으로 등대가 있습니다.

강력한 살상 무기로 사용되거나 당시 지배층이 제사용 도구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동북 지역인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부터 제주도까지 60여점이 현재까지 발견되었어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기원전 15세기 전후부터 기원전 3~4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칼이지요. 그 후에는 세형동검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조선의 영역은 어디까지?

미송리식 질그릇
미송리식 질그릇
그릇은 바닥이 뾰족했던 빗살무늬질그릇 대신 납작한 민무늬질그릇이 등장합니다. 특히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질그릇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데, 평남과 중국 랴오닝성 일대에서도 발견되어 학자들은 고조선의 영역을 알 수 있는 유물로 봅니다. 이외에도 대동강 일대의 팽이모양질그릇이나 부여 송국리에서 발견된 달걀 모양의 질그릇 등 청동기 시대는 다양한 형태의 질그릇이 있습니다. 참고로 부여 송국리의 돌널무덤과 비파형동검 그리고 민무늬질그릇의 청동기문화는 일본 규슈에 전해져 ‘야요이 문화’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한편, 위에서 본 여러 질그릇의 제작 연대도 기원전 15세기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의 영역과 시작 연대를 교과서보다 더 넓고 더 높게 설정합니다. 교과서에선 고인돌, 비파형동검, 미송리식질그릇이 나오는 곳을 고조선의 범위로 보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비파형동검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질그릇이 발견되는 곳까지 포함하여 고조선의 영역으로 여깁니다. 또한 기원전 10세기부터 만주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청동기 문화가 있었다는 교과서의 서술보다 그 상한선을 더 올려야 한다고 해요. 기원전 20~15세기에 이 땅에서 청동기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단군왕검이 세웠다는 고조선의 시작 연도는 기원전 2333년이 맞는 건가요? 그리고 단군은 실존 인물인가요? 그리고 고조선의 영역은 어느 정도인가요?

가장 쉽게 지나치는 부분이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되기도 하지요. 바로 우리 민족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라 하여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국가적 정책을 펴고 있고, 일본이 왜곡된 역사 교육과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 우리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 제대로 된 의문을 던지고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조선사를 수십년 동안 전공한 역사학자가 아닌 제가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 하나만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단군의 아들이 곧 주몽이다?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배문고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배문고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바로 우리는 중국·일본과는 다른 민족 국가로 출발하였으며 독자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진부하다고요? 만약 우리가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참을 수 없이 바로 반박하고 나설 것입니다. 결국 단군이 실존했던 인물이거나 신화 속 인물이라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라면 우리만의 고유한 역사가 단군 조선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역사인식’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일제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 운동을 나설 수 있는 힘이었으며 몽골에 맞선 고려의 항쟁, 그리고 멀게는 중국 한(漢)나라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고조선의 힘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단군왕검에 대한 기록은 13세기 『삼국유사』에 등장합니다. 여기엔 놀랍게도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에 대하여 ‘단군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앞서 5세기 고구려인들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주몽을 ‘천제(天帝)의 아들’로 기술하였지요. 그렇다면 단군은 실존 인물일까요, 아니면 ‘천제’를 뜻하는 호칭일까요?

이를 하늘을 뜻하는 몽골어 ‘텡그리’와 유사하다고 보고 제사장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제정일치의 사회 모습을 단군 왕검이 보여주고 있으며 ‘단군’이라는 최고통치자 혹은 천제를 뜻하는 호칭이 대대로 이어졌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요.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는 왼쪽 나무 아래 곰과 호랑이가 보입니다. 심지어 중국 한(漢) 대에 만들어졌다는 산동성의 무씨사당에도 곰, 호랑이 그리고 단군의 내용이 새겨져 있답니다. 여전히 단군과 고조선은 우리의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