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커지는 부유세
"근검 절약해 모은 재산 빼앗겨"
저축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야기
과세 피하려 자본 해외 유출도

'맹점' 간파 못한 부유세
세계가 자산정보 공유 않고는
부자들, 부유세 국가 떠날 것
정밀한 소득세 부과가 차선책
[글로벌 뉴스] 저축률 떨어지고 국부유출…피게티는 '부유세 함정' 못봤다
프랑스가 지난 1일 연소득 100만유로(약 13억46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75%의 세율로 부과하던 부유세를 폐지했다. 비록 자산에 대한 부유세 부과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유럽에서 지난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불평등 해소의 해법으로 부유세가 주목받고 있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부유세 폐지에 나서고 있다. 부유세를 도입한 유럽 국가는 한때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 12개국에 달했지만 현재 명맥을 유지하는 국가는 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등 3개국뿐이다.

복지 확대와 불평등 해소 위해 도입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부유세는 20세기 초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북유럽을 중심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10년 스웨덴에서 상위 1% 부자들은 전체 자산의 60%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른 불만에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 운동이 결합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부유세 시행이 설득력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발호와 68혁명(1968년 전후에 일어난 좌파 학생운동) 등을 통해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유럽 내에서 커지면서 부유세 시행 국가는 1980년대까지 꾸준히 늘어났다.

이들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인 개인 자산에 대해 1~2%의 부유세를 부과했다. 한국의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하지만 현금과 귀금속, 저축까지 과세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범위가 더 넓다.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만 부과하는 종부세와 달리 대출분을 제외한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도 다르다. 소득에까지 과세한 프랑스의 부유세는 부유세 중에서도 급진적인 형태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013년부터 연소득 100만유로(약 14억5000만원) 이상인 직원을 둔 프랑스 기업에 100만유로 이상 급여의 약 75%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사가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부유세 제도를 도입했다.

저축 감소, 자본 유출, 조세 저항 부작용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유럽에서는 부유세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작년 6월 출간한 저서 ‘새로운 금융질서, 21세기의 리스크’에서 부유세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부유세는 저축을 징벌하는 제도”라며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에 세금을 걷어 저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타인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유세가 저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지난해 3월 다빗 자임 스톡홀름대 교수가 증명했다. 자임 교수는 2000년부터 7년간 스웨덴 납세자 5100만명을 대상으로 부유세 부과 기준 변화에 따른 자산 축적을 조사했다. 2001년 조사에서 독신자들의 순자산은 부유세(1.5%) 부과 기준인 100만크로네(약 1억4000만원)를 기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부유세 부과 시점까지만 자산을 축적하고 이후에는 추가로 저축하려는 유인이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부유세 부과 대상자의 해외 이민으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도 문제다. 특정 국가의 세금이 지나치게 높다면 해당 국가의 부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피케티가 ‘글로벌 부유세’라는 이름으로 모든 선진국이 함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다.

부유세는 징세과정에서도 비용 발생

부유세는 조세 저항이 다른 세금보다 심해 징세 과정에서도 비용이 발생한다. 프랑스는 부유세 등 세금 징수 과정에 총 조세 수입의 1.6%를 징세 비용으로 쓰고 있다. 미국에서 해당 비율은 0.49%에 불과하다. 1910년부터 한 세기가량 부유세를 시행한 스웨덴에서도 부유세에 대한 조세 저항은 심했다. 부유세 폐지 1년 전인 2006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부유세를 내지 않기 위해 일상적으로 속임수를 쓴다고 답했다. 프랑스에서는 탈세로 2004년 부유세로 걷을 것으로 예상한 돈의 28%가 새나갔다.

노영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케티의 말처럼 부유세를 세계 모든 국가가 시행하려면 과세 대상인 금융 및 부동산 자산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미 밝혀진 부유세의 맹점을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불평등을 줄이고 싶다면 소득세를 정밀하게 부과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노경목/김순신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