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기업가정신과 그 적들 (1) 끝없이 추락하는 기업가정신
<조로증: 早老症·빨리 늙는 병>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경제번영을 일컫는 대명사다. 불과 반세기 만에 거의 폐허의 땅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으니 ‘기적’이란 수식어 외에 다른 단어를 찾기 어렵다. 개발도상국에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은 경제성장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소득 2만달러대를 극복하고 5만달러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의 부활이 필요하다. 국민 의식 또한 선진국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올라야 한다. 생글생글이 ‘경제 대도약-5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기획기사를 실는 이유다.<조로증: 早老症·빨리 늙는 병>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8%였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우리 경제의 뼈대를 이룬 기업들이 태동한 게 이 무렵이다. 이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1980년대 평균 성장률은 9.7%였으며 1990년대는 6.6%로 떨어졌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3%대 성장률이 고착화되는 추세다. 작년 한국 경제 성장률 추정치는 2.8%,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9%다.
선진국 문턱을 눈앞에 둔 현 경제 상황에서 3%대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떨어지는 속도가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해왔던 속도만큼이나 한국 경제의 정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성장률 하락만이 문제는 아니다. 2007년 2만달러를 넘어선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 기준)은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4대 그룹을 제외한 30대 그룹의 수익성(매출 기준 순이익률)은 2002년 6.38%에서 2012년 2.71%로 뚝 떨어졌다. 더딘 성장은 고용에도 영향을 준다. 청년 실업률은 2002년 7%에서 현재 8.3%로 치솟았다. “한국 경제가 ‘조로증(早老症)’에 걸렸다”(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업에 ‘양극화 주범’ 낙인 찍은 한국
경고음은 바깥에서도 들려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년 6월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8년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독일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 부담 없이 한 나라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이룰 수 있는 성장의 정도를 의미한다. 성장률 0%는 ‘현상 유지’가 아닌 ‘퇴보’다. 저성장 시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국가와 산업의 근간을 뒤흔든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맥킨지도 작년 4월 “한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북핵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한국 경제의 성공 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없는 분배는 없다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길은 없는 것일까.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거 저임금 구조에서나 가능했던 성장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단시일 내에 내수시장을 키우는 것도, 자본 투입(투자)을 무한정 늘리기도 힘들다. 최병일 전 한국경제 연구원장은 “결국 돌파구는 기업가정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차(馬車) 시대에서 자동차 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헨리 포드, 휴대폰시장에서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스티브 잡스가 그들이다.
한국에도 이병철 삼성 창업주, 정주영 현대 창업주 등 기업가정신의 표상은 많았다. 그러나 명맥은 단절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기업과 반(反)기업의 이분법적 정서가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동반성장, 규제로 기업을 쪼개고 나누겠다는 발상으로는 성장을 이룰 수 없다”며 “성장 없는 분배는 있을 수 없으며, 결국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게 최대 당면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이건호 팀장(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 이태명·정인설·전예진(이상 산업부) 김유미 (경제부) 박신영 (금융부) 이태훈 (정치부) 정영효 (증권부) 김병근 (중소기업부) 심성미 (IT과학부)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