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한 장이 소중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Focus] 1인 400달러→600달러…26년 만에 늘어난 면세 한도, 면세점 더 북적일까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 주변 누군가의 ‘출국’은 그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해외 출장은 직장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달러 한 장도 소중하던 시절이기에 해외여행 면세한도는 30만원으로 제한됐다. 2013년 해외여행자는 역대 최고인 1484만6000명. 인구 대비 해외여행자 비율은 2003년 15%에서 2013년에 29.7%로 두 배 증가했다. 1988~2013년까지 26년 사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548달러에서 2만6205달러로 5.7배 늘었지만 면세한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매년 1400여만명이 해외여행을 하고 국민 소득수준이 크게 향상됐음에도 면세한도만큼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최근 정부가 26년 만에 해외여행 휴대품 면세한도를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올렸다. 늘어난 면세한도에 대다수 해외여행객들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낮은 한도에 상승 폭이 작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0만원→400달러→600달러로

면세한도는 입국할 때 면세점과 해외에서 구매한 물품이 면세되는 1인당 한도액이다. 정부는 9월5일부터 기존의 한도액인 400달러에서 50% 올려 600달러까지 면세를 적용하고 있다. 600달러가 넘는 해외물품 구입액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단 주류 한 병, 담배 한 보루, 향수 60mL 등 제품별 면세 수량은 별도다. 1988년 30만원이던 면세한도를 사실상 26년 만에 늘렸다.

면세한도 증액은 지난 7월 정부 세제개편안의 일환으로 소비 활성화를 위한 방침 중 하나다. 내국인의 소비 활성화와 더불어 외국인 여행객의 소비를 늘려 국내 내수 회복에도 도움될 것으로

단한 것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600달러의 상향된 면세한도가 적용된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은 대략 1500만명으로, 상향된 면세한도는 면세점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면세한도 상향 후 국내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증가했다. 추석연휴로 늘어난 해외여행객과 면세한도 상향 조정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인상구간인 400달러에서 600달러 구간 제품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40만~60만원대인 삼성 갤럭시탭S, 디지털 카메라 등의 전자제품, C브랜드 여성가방, 벨트 등의 판매가 급증했다.

소득향상·해외여행 증가 반영
[Focus] 1인 400달러→600달러…26년 만에 늘어난 면세 한도, 면세점 더 북적일까

첫 면세한도는 1976년에 정해진 10만원이었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양대 행사를 치르면서 국제적 위상이 오르고 국제수지 흑자 및 해외여행 자유화 추세를 반영해 1988년에 30만원(당시 환율 기준 400달러)으로 올랐다. 이후 1996년에 400달러로 고정됐다. 이번 면세한도 상향은 사실상 26년 만에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올린 것이다.

한도 상향 논의는 계속 제기돼 왔다. 2011년에도 주요 국가에 비해 면세한도가 낮고 급증하는 해외여행객들의 편의를 높여주자며 면세한도 상향이 활발히 다뤄졌지만 정부는 결국 유보했다. 특정 계층의 면세 혜택을 높여 과세 형평성과 조세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수산업 보호와 과소비 조장 등의 지적에 무산됐다.

3년 만에 다시 면세한도 조정 논의가 제기된 것은 국민소득에 걸맞지 않는 간판 규제 사례로 거론되면서 부터다. 기획재정부가 연구용역을 맡긴 산업연구원은 “소득수준 향상, 국민들의 해외여행 증가, 다양한 해외구매 요구 수준 등을 반영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면세 한도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대만 등 주변국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기본 면세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1865달러·중국 815달러

주요국의 면세한도는 어떨까. 일본의 면세한도는 20만엔(약 1865달러) 수준이며 미국은 체류 기간과 방문 국가에 따라 200, 800, 1600달러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은 430유로(560달러)이고 홍콩은 면세한도가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2만6205달러)의 4분의 1 수준인 중국(6747달러)의 면세한도는 5000위안(약 815달러)으로 한국보다 높다. 정부 관계자는 “면세한도를 800달러까지 올리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위화감 조성과 과소비 조장 등을 우려해 50%만 올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면세한도 상향 조정과 더불어 정부는 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면세한도 금액을 초과한 물품 구입액에 대해 자진 신고하는 여행자에게 세액의 30%(15만원 한도)를 낮춰준다. 또 부정행위자는 신고불성실가산세를 현행 30%에서 40%로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높아진 면세한도에도 해외 여행객들은 아직도 한도금액이 낮다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은 “휴대품 면세한도를 더 올려야 한다”며 “1988년 이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물가상승률도 반영하지 못한 증액”이라고 지적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