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정치적 격랑에 휘말리면서 금융 허브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은 1997년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를 유지해왔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 덕분에 홍콩이 글로벌 기업에 갖는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 간 대립이 날로 격화되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홍콩 반환 후 50년간 유지하기로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흔들릴 경우 홍콩을 아시아 사업의 거점으로 둔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7년 행정장관 선출 방식 두고 대립

홍콩 반환 17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 홍콩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 측 추산 약 10만명, 주최 측 추산 50만명 이상이 참석한 시위는 중국의 간섭을 규탄하고 민주적 직선제를 통한 지도자(홍콩특별행정구 장관) 선출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시위의 슬로건은 ‘홍콩의 자치권을 지키자, 중국의 총체적 간섭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였다. 중국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카카오톡과 라인 등 소셜네트워크 앱을 차단하기도 했다.

시위 발단이 된 것은 중국 정부가 지난달 처음으로 발간한 ‘홍콩백서’였다.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일국양제:홍콩특별행정구의 실천’이란 제목으로 발간한 이 백서는 “홍콩특별행정구는 법에 의해 고도의 자치를 시행하지만 감독권은 중앙정부(본토)가 갖는다”며 “일부 홍콩 사람들은 ‘일국양제’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내 개혁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다. 홍콩 시민은 중국의 이 같은 태도에 거세게 반발했다.

홍콩 민주화 단체 대표들은 ‘센트럴(홍콩의 금융 중심지)을 점령하라’란 이름의 민주화 운동 협의체를 구성해 저항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달 하순 홍콩 행정장관 선출 방식에 대한 비공식 국민투표까지 시행해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비록 법적 효력은 없지만 홍콩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80만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다수는 선거개혁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개혁안은 홍콩 행정장관 후보를 국민과 정당, 후보선출위가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중 성향 언론에서 이 투표를 ‘불법적이고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라고 깎아내렸다.

중국 정부는 직접 투표는 실시하되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행정장관의 주요 덕목으로 ‘애국심’을 제시했다. 홍콩 민주화 인사들은 “중국 정부가 얘기하는 ‘애국심’은 결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뜻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축적된 불만이 수면 위로

홍콩시민과 중국 정부 간의 최근 대립은 직접적으로 선거제도를 둘러싼 것이지만 근저에는 중국 체제하에서의 삶에 대한 홍콩 시민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환 전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을 하지 않을 것이며 홍콩 사람들의 자유는 보호될 것이고 사법권 독립도 유지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홍콩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 국정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애국심과 공산주의 가치를 가르치는 국민교육을 홍콩 학생들의 필수과목으로 도입하려다 항의 시위로 철회하기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2003년에는 홍콩 특별행정구에 국가안전법(기본법 제 23조) 초안을 마련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WSJ는 “이 법은 반체제 인사들을 억압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홍콩인 50만명이 가두시위를 벌이자 중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경제적 불평등도 한 원인이다. 홍콩은 아시아에서 빈부격차가 큰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중국 본토 자금이 대거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봉급 생활자는 자력으로 내집 마련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중국 본토 소비자의 ‘사재기’로 분유 등과 같은 일부 제품 품귀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홍콩 시민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란 분석이다. FT는 “대다수 홍콩 시민은 중국으로 반환된 뒤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느낀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 중국 정부 눈치보기

지난달 ‘홍콩백서’가 발표됐을 때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바짝 긴장했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꼽힌다. ‘특별행정구’라는 지위 덕분에 중국으로 편입된 이후에도 이런 환경이 유지됐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 기업 활동은 제약받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최근 중국 정부에 비판적 논조를 가진 신문에 대한 광고 게재를 중단했다. PwC·딜로이트·KPMG·언스트&영 등 글로벌 ‘빅4’ 회계법인은 홍콩 신문에 최근 민주화 운동에 반대하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FT는 “홍콩에 있는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은 중국 본토에서의 비즈니스 때문에 중국 정부에 쓴소리를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후퇴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홍콩을 아시아 지역의 허브로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