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추가 조치 필요" vs 유럽·일본 "글쎄"
“전 세계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보다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2일(현지시간)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위험’을 경고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에 던진 메시지다. 라가르드 총재는 특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과 일본을 겨냥해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포함한 비전통적 조치를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IMF “유로존, 디플레 위험 여전”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초청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를 넘겼지만, 회복세가 미약하다”며 디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특히 유로존에서의 저물가에 따른 디플레이션 위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ECB가 저물가를 타개하기 위한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은 지난해 2분기를 기점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2월부터 1%대에 진입한 뒤 여전히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지난달에는 0.5%까지 추락하며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ECB가 즉각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자칫 경기 회복을 위한 모멘텀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게 IMF의 판단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저인플레에 따른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ECB가 비전통적 조치를 포함, 더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은 경제 주체들의 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소비와 투자를 늦추고, 이로 인해 경기가 나빠지기 때문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ECB, 5개월째 기준금리 동결

IMF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ECB는 경제상황을 보며 양적완화를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ECB는 지난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사에서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0.25%로 동결하기로 했다. 작년 11월 이후 5개월 연속 동결이다. 추가적인 경기부양책도 내놓지 않았다. 3월 소비자물가가 ECB의 정책목표인 2%를 훨씬 밑돌았지만, 경기 회복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경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럽통계청이 발표한 유로존의 2월 소매판매는 0.7% 감소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0.4% 증가했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럽과 미국의 금융시장 상황이 다름을 지적했다. 그는 “라가르드 총재가 ECB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미국 경제는 자본시장에 의존하고 있어 양적완화가 바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유로존은 다르다”며 “은행 여신 의존이 큰 유로존 경제의 물가 전망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CB는 그러나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날 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드라기 총재는 “비전통적인 수단을 총동원해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처하겠다”며 “양적완화 정책 역시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다. 에브라힘 라바리 씨티그룹 연구원은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ECB 예측을 벗어나 낮은 수준에서 계속 머문다면 ECB는 6월쯤 결국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BOJ, 양적완화 확대 주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도 양적완화 조치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지난 1일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했지만, 경상수지와 기업심리 등의 지표가 일본 경제의 회복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은 8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작년 4월 도입한 2년간 132조엔(약 1346조원)을 공급하는 공격적 양적완화 정책을 이어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추가적 양적완화 조치를 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이다.

경기 기조 판단에서도 ‘완만한 회복’이라는 표현을 7개월 연속 유지했다. 소비세가 인상됨에 따라 일시적으로 경기가 위축되겠지만, 여름쯤에는 회복 궤도로 다시 돌아설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지난 1일 단행된 소비세율 인상 이전에 물건을 미리 사두는 ‘선(先)수요’가 자동차, 가전제품, 주택 투자, 일용품 등에서 두루 발생한 만큼 4~6월 개인소비를 중심으로 갑작스러운 소비 감소세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는 “여름철 이후 고용과 소득 환경의 개선에 힘입어 (소비세 증세의) 영향이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여름 이후 경기가 정상궤도로 재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Global Issue] 양적완화 정책 지속…엇갈린 지구촌
글로벌기업들은 지금 호주를 떠난다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호주를 떠나고 있다. 호주 달러 강세로 환율 부담이 커지고 인건비 등 생산비용이 증가해 호주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글로벌기업들이 지금 호주를 떠나는 이유)이다. 다국적 석유기업 BP와 말보로로 유명한 담배회사 필립모리스가 호주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BP는 내년 퀸즐랜드주 브리즈번공항 근처에 있는 정제공장을 폐쇄할 계획이다. BP 관계자는 “싱가포르, 인도 등에 정제공장이 속속 생기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며 “다른 지역에서 정제유를 사오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는다”고 설명했다.

필립모리스도 60년 넘게 운영해온 멜버른 공장을 올해 안에 닫는다. 최근 호주 정부가 담배 생산과 수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50%에 그칠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지난 160여년 동안 호주 제조업의 주축이었던 자동차산업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도요타 등이 작년부터 호주에서의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호주 달러 강세로 인한 환율 부담, 인건비 등 생산비용 증가 등이 이유로 꼽힌다.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호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5.96호주달러(약 1만5478원)로 한국(4860원)의 3.2배가 넘는다. 존 필리모어 존커틴 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신흥국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호주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철수하고 감원에 나서면서 고용도 좋지 않다. 호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 2월 실업률은 각각 6%로, 11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김순신 한국경제신문 기자 soonsin2@hankyung.com